[1100원 무너진 원·달러 환율] 시장 뒤통수 친 환율…기업들 달러 손절매에 지지선 무너져
(1) 브렉시트 충격 미미…글로벌 투자심리 회복
(2) 원화 약세 베팅했던 기업들 달러 매물 쏟아내
(3) 국가신용 상향…'바이코리아' 행진 이어져
외환시장을 모니터링해온 한 당국자는 “환율 하락을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며 “시장이 브렉시트 충격을 이렇게 빨리 극복할지도, 미 금리 인상 이슈가 이렇게 무시될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10일 원·달러 환율(1095원40전)은 브렉시트 결정 직후인 6월27일(1182원30전) 이후 86원90전 하락했다. 한 달여 만에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7.9% 오른 셈이다.
글로벌 투자심리 회복세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김정호 K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브렉시트 충격이 빠르게 잦아들자 위험자산인 신흥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됐다”며 “올 들어 선진국 주식시장이 1.5% 수익률을 낸 반면 신흥시장은 8%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의 통화 완화정책으로 풀린 돈이 브렉시트 영향을 직접 받는 유럽 대신 아시아 신흥국으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는 지난달 4조79억원으로 월별 기준으로 작년 4월 이후 최대였다.
◆수출기업 손절매 물량도 부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이달 8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 조정한 것도 영향을 줬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외국인 주식 매수가 주춤해지는 시점에 마침 호재가 나와 매수세가 연장됐다”고 설명했다. 낮은 국가부채비율 등 한국 경제의 양호한 기초체력이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올해 6월30일부터 이달 9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가치 상승률은 4.13%로 인도(0.95%) 싱가포르(0.22%) 인도네시아(0.15%) 등 주요 신흥국을 뛰어넘었다.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선’으로 여겨지던 1100원 선이 깨지자 시장은 긴장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 한때 1091원80전까지 단숨에 하락하기도 했다. 일부 수출 기업이 달러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이를 손절매하면서 환율 하락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이 더 하락하면 기업들이 ‘롱포지션(달러 매수)’ 정리에 나서면서 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율의 방향을 좌우했던 미 금리 인상 변수는 뒤로 물러났다. 미국 지표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데다 대통령 선거까지 앞두고 있어 금리 인상 기대감은 올초보다 낮아졌다.
◆고심하는 외환당국
원화 강세는 수출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국내 수출이 뒷걸음질치면서 2분기 성장률은 3분기째 0%대에 그쳤다. 원화 강세 기조가 이어지면 올해 정부가 예상한 성장률 2.7%도 힘겨워질 수 있다. 환율 상승에 베팅한 국내 수입 업체 등에선 ‘역(逆)키코’ 사태 우려도 높아졌다.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을 직접 방어하기도 쉽지 않다. 미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외환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송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매수는 브렉시트와 글로벌 저금리를 배경으로 한 ‘수익률 사냥’ 때문”이라며 “단기간 신흥시장 자금 유입이 많아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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