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위키드’에서 ‘남들 주목받는 꼴은 못 보는’ 철없는 금발 마녀 글린다 역을 맡은 그를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심한 감기 때문에 이틀간 무대에 서지 못했어요. 14년 배우 인생에 그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에비타’ 때는 무대 사고로 다리가 엄청나게 부었는데도 무대에 올랐거든요. 이번엔 이틀이 1000일 같았습니다. 무대에 돌아왔는데 박혜나 언니와 마주보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언니가 입을 덜덜 떨면서 울려고 하더라고요. 저를 그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죠. ‘성장통’을 겪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인생철학은 독특하다. 1년을 3분의 1로 쪼개 4개월은 열심히 무대에 서고, 4개월은 여행을 다니고, 4개월은 운동을 한다. “공연은 다른 장르와 달리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것만 연습해요.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죠.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요. 그렇게 온 힘을 다해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요. 그럼 또 몇 달씩 여행을 떠납니다.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기 전 준비 과정이랄까요. 가서 풍선을 빵빵하게 채워오는 거죠, 하하.”
지난 연말에는 뮤지컬 ‘데스 노트’를 마치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체코 등을 다녀왔다. 현지 강사에게 성악 레슨도 받았다. 뮤지컬 위키드에서 성악 발성을 오가며 노래를 부르는 글린다를 좀 더 잘 소화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10을 벌면 10을 투자해서 여행하고, 그러다 보면 0이 된다. 그럼 돌아와 또 일을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예전에는 주목받기만을 바라는 철없는 배우였다면, 이제는 무대의 다른 배우들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뮤지컬계 디바’로 살면서 자신의 자리에 만족했다. 방송 출연 등을 고사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도 많이 오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고요. 집중하는 모습에서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워요. 그래서 정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방송 쪽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굳이 꼽자면 ‘복면가왕’에 한 번 출연해 보고 싶네요. 김구라 씨가 저를 매번 찾으시더라고요, 하하.”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