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기본소득 논의하자며 왜곡부터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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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해소한다는 증거 없고
제도 도입한 나라 한 곳도 없어
진실 가린 채 복지국가 꿈꾸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제도 도입한 나라 한 곳도 없어
진실 가린 채 복지국가 꿈꾸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세를 불리나 보다. 재산이나 소득이 많건 적건, 노동을 하건 안 하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빈부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좌파 세력의 단골 메뉴인데 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청년배당’이라는 형태로 들고나와 논란거리를 만들더니 이제는 국회에서도 논의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새로운 논의가 거북한 건 아니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무슨 논의인들 못하겠는가. 하지만 출발부터 걱정이다.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들이 난무해서다.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만 시대에 뒤진 것처럼 호들갑이다. 지방정부 차원이라면 미국 알래스카가 있기는 하다. 솟아나는 석유를 팔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준다. 우리도 석유가 지천으로 나오면 모를까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다. 표본이나 실험 없이 사회보험 제도를 입법한 철혈재상의 시대가 아니다. 어느 나라고 기본소득 제도를 선뜻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기본소득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론하는 성공 사례가 있다. 나미비아 오트지베로(Otjivero)에서의 테스트다. 이곳에서는 2008년부터 주민 1000명 모두에게 1만5000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했다. 결과는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의 기본소득 제도는 2~3년 뒤 중단됐다. 해외 종교단체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몇몇 현지 언론들은 오트지베로에서는 어떤 형태의 진보도 없었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종교단체가 정보를 차단해 초기 성과조차 믿을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곳은 기본소득론자들에게 여전히 성공 사례일 뿐이다.
얼마 전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에 대한 분석도 기막히다. 77%의 반대로 무산된 투표다. 진보 진영은 모든 국민에게 우리 돈으로 월 300만원을 주겠다는 안에 23%가 찬성했다는 자체가 놀랍다며 우리도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열광했다. 하지만 스위스 국민투표의 핵심은 기본소득을 얼마나 주느냐가 아니었다. 그동안 제공한 복지 대신 기본소득을 줄 테니 개인들이 스스로 복지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무분별한 복지 지출을 줄이고 복지 행정을 단순화해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우파 정책이다. 정부의 복지 혜택이 사라진다는 걸 무시했으니 이런 왜곡도 없다.
2017년부터 매달 100만원가량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노총이 반대하겠는가. 결국 선진국의 기본소득 제도는 줄줄 새는 복지 예산의 배분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일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질 게 분명하니 인간적 삶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성급하다. 기술의 진보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관념은 러다이트운동 시절부터 이어져온 오류다. 신기술은 파괴한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인류에게 제공해 왔다. 직업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제도와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요할 뿐이다.
독일 의회는 2013년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국민들의 근로 동기를 줄여 경제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데다 재정 확충을 위한 세금 인상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높여 저소득층에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이유였다. 세제와 사회보험, 연금제도에 막대한 재정 자금이 소요되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민의 폭발적 증가 등의 다른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됐다. 독일 의회의 이런 사례를 인용하는 진보 인사는 없다.
전파사용료 일부를 걷어 기본소득의 밑천으로 삼자는 주장에서 연기금으로 대기업을 국유화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까지 별의별 기기묘묘한 얘기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멀쩡한 국민과 기업의 돈을 뜯어내자는 얘기다. 세금은 내지 않고 복지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근로소득자 가운데 소득세를 한 푼 내지 않는 면세자가 48.1%다. 상위 10% 납세자가 전체 소득세 세수의 68%를 감당한다. 복지 천국 북유럽의 두 배다. 그런데도 이제는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기본소득을 떠들고 있다. 터무니없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새로운 논의가 거북한 건 아니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무슨 논의인들 못하겠는가. 하지만 출발부터 걱정이다.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들이 난무해서다.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만 시대에 뒤진 것처럼 호들갑이다. 지방정부 차원이라면 미국 알래스카가 있기는 하다. 솟아나는 석유를 팔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준다. 우리도 석유가 지천으로 나오면 모를까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다. 표본이나 실험 없이 사회보험 제도를 입법한 철혈재상의 시대가 아니다. 어느 나라고 기본소득 제도를 선뜻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기본소득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론하는 성공 사례가 있다. 나미비아 오트지베로(Otjivero)에서의 테스트다. 이곳에서는 2008년부터 주민 1000명 모두에게 1만5000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했다. 결과는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의 기본소득 제도는 2~3년 뒤 중단됐다. 해외 종교단체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몇몇 현지 언론들은 오트지베로에서는 어떤 형태의 진보도 없었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종교단체가 정보를 차단해 초기 성과조차 믿을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곳은 기본소득론자들에게 여전히 성공 사례일 뿐이다.
얼마 전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에 대한 분석도 기막히다. 77%의 반대로 무산된 투표다. 진보 진영은 모든 국민에게 우리 돈으로 월 300만원을 주겠다는 안에 23%가 찬성했다는 자체가 놀랍다며 우리도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열광했다. 하지만 스위스 국민투표의 핵심은 기본소득을 얼마나 주느냐가 아니었다. 그동안 제공한 복지 대신 기본소득을 줄 테니 개인들이 스스로 복지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무분별한 복지 지출을 줄이고 복지 행정을 단순화해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우파 정책이다. 정부의 복지 혜택이 사라진다는 걸 무시했으니 이런 왜곡도 없다.
2017년부터 매달 100만원가량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노총이 반대하겠는가. 결국 선진국의 기본소득 제도는 줄줄 새는 복지 예산의 배분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일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질 게 분명하니 인간적 삶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성급하다. 기술의 진보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관념은 러다이트운동 시절부터 이어져온 오류다. 신기술은 파괴한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인류에게 제공해 왔다. 직업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제도와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요할 뿐이다.
독일 의회는 2013년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국민들의 근로 동기를 줄여 경제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데다 재정 확충을 위한 세금 인상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높여 저소득층에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이유였다. 세제와 사회보험, 연금제도에 막대한 재정 자금이 소요되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민의 폭발적 증가 등의 다른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됐다. 독일 의회의 이런 사례를 인용하는 진보 인사는 없다.
전파사용료 일부를 걷어 기본소득의 밑천으로 삼자는 주장에서 연기금으로 대기업을 국유화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까지 별의별 기기묘묘한 얘기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멀쩡한 국민과 기업의 돈을 뜯어내자는 얘기다. 세금은 내지 않고 복지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근로소득자 가운데 소득세를 한 푼 내지 않는 면세자가 48.1%다. 상위 10% 납세자가 전체 소득세 세수의 68%를 감당한다. 복지 천국 북유럽의 두 배다. 그런데도 이제는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기본소득을 떠들고 있다. 터무니없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