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미국에 잠시 거주할 때다. 동네 슈퍼에 갔다가 한국에선 전혀 못 보던 장면과 마주쳤다. 서너 살 꼬마가 뭔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자 아빠가 곧바로 둘러업고 출입구를 향해 냅다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아이 울부짖는 소리가 다른 손님에게 행여라도 폐가 될까 그러는 것이었다. 최근 가족들과 주말에 식당을 찾았다. 옆 테이블 꼬마가 다가와 내 숟가락과 냅킨 등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는데도 부모는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온 식당을 휘젓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녀도 마찬가지였다.

학원가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한 동네. 학원이 파할 시간이면 교통은 거의 마비된다. 아이를 데리러 온 차들 때문이다. 웃긴 건 학원 앞에 늘어선 차량이 한 줄이 아니라는 것이다. 줄이 너무 길어 학원 앞에 차를 못 댈 것 같으면 아예 한 차선을 더 점령한다. 네 개 차로 중 두 개 차로를 이런 식으로 차지하니 불과 100여m를 전진하는 데도 몇 분이 걸린다.

나와 내 식구만 챙겨

한국인의 끔찍한 아이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한 아이 사랑 문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 주변엔 ‘나’와 ‘내 가족’만 소중할 뿐 남들은 어떻게 되든, 어떤 불편을 겪든, 전혀 상관 않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대로를 점령해 불법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운전하다 차창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꽁초를 버린다. 이른바 ‘노쇼’는 기본이고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내리기도 전에 먼저 밀고 들어간다. 층간 소음 갈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등산로에는 시끄러운 음악과 고성이 가득하다. 늘어선 좌회전 차량 사이로 끼어들기가 다반사고 누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철천지원수를 만난 듯 으르렁댄다.

권리 의식만 높아졌을 뿐 공공의 이익은 고사하고 공중도덕이나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불특정 다수가 잠깐 불편을 겪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폭스바겐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배기가스 조작 디젤차가 뿜어대는 매연은 우리 모두가 숨쉬는 공기를 오염시킨다. 그런데도 꿈에 그리던 외제차가 대대적 세일을 한다며 줄서서 폭스바겐을 사는 게 한국인들이다.

공동체 의식 없인 선진국 요원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반대 시위는 더하다. 국가 안보 같은 것엔 관심도 없고 “내 동네만은 안 된다”는 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지금처럼 비리와 부실의 상징이 된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낙하산 임원이나 비리 직원이나 모두 회사가 어떻게 되든 자기 몫만 챙기려 든 결과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나라 재정이 거덜나든 말든 사탕발림 공약으로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국가, 공동체, 시민의식 따위는 시쳇말로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자녀 교육 때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는 좀 친해지면 간도 빼줄 듯하지만 잘 모르는 남에겐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까지 종종 드러낸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올해로 벌써 20년이다. 각종 지표에서 여전히 OECD 하위권이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 지표가 있다면 아마도 뒤에서 1등을 독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성장도 개헌도 중요하지만 이런 국민 의식으로는 OECD 가입 20년 아니라 50년이 지나도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