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가입자와 직장 가입자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온 국민건강보험 부과체계는 정부와 여당에 ‘뜨거운 감자’였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해지는 일부 가입자의 반발을 의식해 지난 3년간 검토만 하다 사실상 포기했다. 이러는 사이 20대 국회 들어 야당이 먼저 치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7일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민주는 ‘여소야대’ 국면을 활용해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만큼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더민주 "건보료 소득중심 부과·피부양자 폐지"…정부·여당은 신중
◆‘소득’ 기준으로 단일화

더민주가 내놓은 개편안의 핵심은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차등을 없애는 데 있다. 그동안 직장 가입자는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고, 지역 가입자엔 소득뿐 아니라 재산, 자동차 등에도 보험료를 매겼다. 이 때문에 직장 가입자는 퇴직 후 보험료가 크게 늘어나는 문제가 지적됐다. 개편안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준을 소득으로 단일화했다.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 이자, 배당, 연금, 퇴직금, 양도, 상속, 증여소득 △소득세법상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일용근로소득, 기타소득 등이다.

근로소득자도 지금은 근로소득 이외에 연 7200만원 이상 종합소득(금융·사업소득 등)이 있는 경우에만 별도로 건보료를 매기지만, 개편안에서는 비과세분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소득 등에 대해서도 건보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오른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날 발의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오른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날 발의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부양자 제도 폐지

지금까지는 재산이 9억원 이하이면서 연금소득과 금융소득이 각각 4000만원 이하인 사람은 자녀나 부모, 형제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돼 ‘무임승차’ 논란이 제기돼 왔다. 더민주 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소득이 연 1만원이라도 있는 사람은 이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내야 하는 셈이다. 임대소득이나 연금소득이 있지만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부모는 앞으로 소득에 맞게 보험료를 내야 한다. 직장이 있는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전업주부는 연소득이 전혀 없다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세대 구성원 모두 무소득자인 경우 최저 보험료(월 3560원)를 내야 한다.

◆증여·퇴직소득에도 부과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더민주)은 “안이 통과되면 전체 가입자의 최대 90%는 보험료가 내려간다”고 말했다.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 자동차에까지 보험료가 부과되던 지역 가입자가 주로 혜택을 볼 것이라는 게 양 위원장의 설명이다.

보험료 부담이 가중되는 10%는 주로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나 고소득층이다. 특히 직장 가입자는 근로소득 외 벌어들이는 금융소득이 많을 경우 보험료 부담이 크게 오른다. 또 상속·증여소득이 많으면 ‘건보료 폭탄’이 생길 수도 있다. 개편안에서는 현재 부과 대상이 아닌 퇴직금과 양도·상속·증여소득 등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도 건보료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증여소득에 매기는 건 과도”

전문가들은 ‘소득 중심’으로 건보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더민주 안의 방향은 맞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단번에 없애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소득자들에 대한 보험료가 지나치게 급하게 올라가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70%를 밑도는 점도 문제다. 신 연구위원은 “소득을 단일 기준으로 할 경우 자영업자나 전문직 등 개입 사업자들에 비해 소득이 전액 노출되는 근로 소득자들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여, 상속, 양도, 퇴직소득 등에 보험료를 매겨야 하는지 여부도 논쟁거리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박사는 “증여, 퇴직소득 등은 일회성 소득인 데다 보험료도 크게 부과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은 더민주의 개편안에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건보 체계 개편은 전 국민의 이해가 걸린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성미/은정진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