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스티븐 그린스펀 코네티컷대 명예교수는 2008년 12월 《쉽게 속는 경향에 대한 기록》을 출간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속고 있는지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덜 속을 수 있는지에 관한 유용한 조언을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책이 나온 시점에 희대의 폰지 사기 사건이 터졌다. 펀드매니저 버나드 메이도프가 저지른 것으로 피해 규모가 645억달러(약 75조원)에 달했다. 수많은 피해자 중에 그린스펀 교수도 있었다. 퇴직 대비 자금의 30%를 날렸다. 그린스펀 교수는 고수익을 내세운 펀드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뿐이 아니다. 상당한 금융 지식을 갖춘 개인투자자, 대형 투자회사, 메이도프의 투자상품을 판매한 자펀드, 메이도프의 회사와 같은 조직을 규제하는 증권거래위원회까지도 메이도프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는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도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마을]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늘 속는다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오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된 선택과 결정으로 이끄는 인지적 편향들을 설명하고 이런 실수와 편향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 책 두 권이 번역·출간됐다. 맥스 베이저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와 마이클 J 모부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판단의 버릇》이다.

두 저서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를 필두로 인간의 행동과 판단, 의사결정에 대해 이뤄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쓰였다. 두 저자가 드는 다양한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 중에는 메이도프 사기극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베이저만 교수는 책에서 인지의 실패와 이로 인한 부실한 개인적 결정 및 조직적 위기,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실패를 다룬다. 각 사례를 자세히 제시하며 사람들이 간과하는 정보의 인식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살핀다. 이를 통해 눈가리개를 쓴 채 한정된 정보에만 집중하는 인간적 경향과 이런 경향 때문에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인지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를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32초짜리 고릴라 영상 비디오다. 비디오에선 흰 옷을 입은 팀과 검은 옷을 입은 팀이 계속 움직이며 농구공을 앞뒤로 패스한다. 시청자들에겐 흰색 팀의 패스 횟수를 맞히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비디오 중간쯤에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성이 화면 한가운데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며 퇴장한다. 실험 결과 상당수의 시청자가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느라 고릴라의 등장을 알아채지 못했다.

메이도프의 사기는 수많은 의혹과 소문이 제기됐음에도 많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했다. 베이저만 교수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인지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긍정적 착각 내지 경향에 사로잡혔다. 사기가 장기간에 걸쳐 ‘미끄러운 비탈’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면 메이도프가 거둔 불가능한 실적은 인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불가능성보다는 해마다 20%에 달하는 수익만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사람이 많았다.

다양한 종류의 ‘맹시’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주변에 있는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는지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놓치는 일부 정보는 중요하고, 심지어 핵심적이기까지 하다. 그중 대다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제적 여건, 건강 상태 등의 변화다. 성공한 사람들은 맹시를 극복하고 인지력을 발휘해 올바른 선택을 이끌어낸다. 베이저만 교수는 인지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잘못된 직관을 극복하고 연관된 데이터를 긴밀하게 살필 것 △외부에서 주어진 정보를 수집해 내부자의 관점을 개선할 것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건을 제시할 상상력을 발휘할 것 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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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부신 교수는 책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행하는 8가지 ‘판단의 버릇’을 지적한다. △외부 관점은 무시하고 내부 관점에만 집착하는 버릇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만족한 채 다른 대안들은 보지 않는 버릇 △명백한 통계학적 증거보다 전문가의 말을 더 믿는 버릇 △주변 사람과 상황에 휩쓸리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버릇 △시스템의 역할은 못 보고 개인의 능력에만 의지하려는 버릇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예전 성공 법칙을 고수하려는 버릇 △치명적 결과를 몰고 올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버릇 △평균으로 돌아갈 것을 모른 채 한때의 좋은 성과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버릇 등이다.

그는 이런 버릇이 우리를 어떻게 착각과 함정에 빠뜨리고 엉뚱한 쪽으로 몰고 가는지를 적절한 사례와 함께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일러준다.

카너먼 교수는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을 연마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두 저자 모두 ‘연마’를 강조한다. 모부신 교수는 “그릇된 버릇들은 사전에 식별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더 나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기술을 적용해 연습하자”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