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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영 칼럼] '호국의 빚' 갚아나가야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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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빚을 진 채 막 내린 6·25전쟁
    참전국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았지만
    원조를 주는 나라란 표현은 마음 편치 않아
    국제사회에 진 빚 갚기 시작하는 나라임을 고백하는 게 어떨까"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이학영 칼럼] '호국의 빚' 갚아나가야 하는 나라
    지난 3월 열린 한·미 연합훈련에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이 참가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나라 군대는 6·25 전쟁 때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매년 봄 ‘쌍룡훈련’을 함께하고 있다. 전쟁 당시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4개국 군대로 구성된 영연방 27여단이 중공군을 섬멸한 ‘가평전투’는 6·25 전쟁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승리로 꼽힌다.

    1951년 4월, 국군 6사단이 중공군의 기습에 38선 일대를 빼앗기고 가평 일대로 후퇴하면서 서울로 이어지는 경춘가도를 내주고 말았다. 가평전선마저 빼앗기면 또다시 서울을 내줘야 할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가평에 투입된 2000명의 영연방 27여단 부대원이 1만명이 넘는 중공군을 물리친 것이다. 승리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병력의 40%가 전사했다. 27여단의 주력이던 호주 왕실 3대대는 지금도 시드니 교외의 대대막사를 ‘가평막사’로 부르며 ‘피를 바쳐 지킨 한국’을 기념하고 있다.

    태국 휴양도시 파타야에서 수도 방콕으로 가는 길에 ‘촌부리’라는 도시가 있다. 태국군 최정예부대인 왕실육군 제2사단 21보병연대가 자리 잡은 이곳에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과 기념관이 있다. 매년 1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파타야 푸껫 등 태국 곳곳의 관광지를 방문하고 있지만, 촌부리 기념탑은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태국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왕실근위대원을 포함한 1만5000여명을 파병했다. 개성 수원 오산 지역에 투입돼 한국군·미군과 평양 탈환을 함께 했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연천 북쪽 ‘폭찹고지’에서 12일간 벌인 전투에서 적을 궤멸, 세계 군사학교들이 지금까지도 고지전(高地戰)의 교본으로 삼는 전과를 올렸다. 밴플리트 당시 미군사령관이 태국군의 지략과 용맹에 감탄해 ‘작은 호랑이(little tiger)’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에티오피아는 최정예 부대인 황실근위대원 6000여명을 6·25 전쟁에 파병했다. 춘천 양구 화천 철원 전선에서 ‘공포의 백병전’으로 적들을 떨게 했다. 탱크 전차 등 기계화전투에는 미군을 내세우고, 총검으로 승부를 가리는 전투에 집중적으로 나서 중공군을 혼비백산시켰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단 한 명도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

    미 해병 1사단이 영하 45도의 혹한 속에서 병력의 10배가 넘는 중공군 12만여명을 궤멸시킨 ‘장진호전투’는 2차대전 당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동계전투 2대 교본’으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 덕분에 10만여명의 북녘 민간인들이 자유를 찾아 ‘흥남철수’의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빚을 진 채 막을 내렸다. 16개국에서 총 34만1000여명이 참전해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거나, 부상을 당했다. 부산에 있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는 그 상징이다. 영국(885명), 터키(462명), 캐나다(378명), 호주(281명), 네덜란드(117명), 프랑스(44명), 미국(36명), 뉴질랜드(34명), 남아프리카공화국(11명), 노르웨이(1명)의 전몰장병들이 이역만리 타향 땅에 묻혀 있다.

    전후(戰後) 한국은 이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ODA)위원회에 가입했다. “신흥국으로는 처음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당시 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한 대목이다. 최근 대통령이 방문한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에서도 ODA 사업이 주목을 모았다.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원조를 주는 나라’라는 표현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국제사회에 크게 진 빚을 갚기 시작한 나라’임을 고백하는 게 어떨까. 겸손함을 넘어서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현대사를 온전하게 살피도록 하기 위해서도 ‘정명(正名)’이 필요하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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