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동남쪽 구석에 해저 화산 폭발로 생긴 라파누이(Rapa Nui), 즉 이스터섬이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3600㎞, 가장 가까운 핏케언섬에서도 2600㎞ 떨어진 그야말로 절해고도다. 1722년 네덜란드의 로헤벤 제독이 부활절(Easter)에 발견하기 전까진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칠레령이다.

라파누이는 ‘커다란 땅’이란 뜻이다.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은 자신들이 ‘세상의 배꼽(중심)’이라고 여겼다. 면적은 약 120㎢로 서울의 5분의 1이다. 500m가 넘는 산도 있다. 연중 강수량은 1100㎜로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나무는 거의 없고 방목용 초지가 있을 뿐이다.

이스터섬은 곳곳에 산재한 모아이(Moai) 석상으로 유명하다. 현재 877개의 모아이가 남아 있다. 대개 높이 3.5~5.5m, 무게 20t 정도인데 높이 10m에 90t짜리도 있다. 탄소 연대측정 결과 1100~1680년께 제작됐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고립된 생태계의 보고라면, 이스터섬은 고립된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외딴 섬에서 거대 석상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명확지 않다. 외계인설까지 있다. 그러나 모아이는 대개 아후(Ahu·제단) 위에 줄지어 있고 이름도 각각이어서 죽은 왕(부족장)을 기리는 용도라는 게 정설이다. 돌은 섬 동쪽 라노 라라크 화산에서 채취했다. 석기로 조각해 잘라낸 뒤 통나무 위에 얹고 밧줄로 당겨서 몇 ㎞씩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섬에는 20m가 넘는 야자수들이 울창했다. 그러나 화전농업과 인구 증가, 모아이 제작용으로 마구 베어내 나무가 사라졌다. 나무가 없으니 배를 만들 수도 없었다. 식량을 구할 방법은 부족 간 전쟁뿐이었다. 1744년 이 섬에 들른 제임스 쿡 선장이 “섬의 모든 사회가 붕괴 일보 직전”이라고 보고한 이유다. 섬의 황폐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라파누이’(1994)다.

최근 유엔환경계획(UNEP)과 유네스코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안 침식으로 모아이 일부가 바다로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1000개 이상 세계문화유산 중 베네치아 등 31개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의 환경보고서는 과장된 경우가 많다. 이스터섬의 모아이들은 넘어져 있던 것을 1960년대에 세워 놓은 것이다.

유명 관광지가 수몰된다니 센세이셔널하다. 시쳇말로 ‘기-승-전-지구온난화’다. 비관론을 선호하는 언론의 구미에 딱 들어맞아 쉽게 널리 유포된다. 유엔환경계획은 “지구의 유일한 희망은 산업문명이 붕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국제기구다. 인류가 멸종하길 바라는 듯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