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래유산] 우리은행, 한국 첫 민족자본 은행…1호 주식회사, 근대금융 유물 2만8천여점 보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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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이자 제1호 주식회사는 1899년 1월 한성부(서울)에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이다. 대한제국 황실의 자금 지원 아래 상인들이 주축을 이뤄 세웠다. 당시 독립협회 건물 옆인 대광교 청계천 북변 장통방 정만석계 1통 1호(종로구 관철동 일대)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하늘 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금융으로 사회와 국민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금융’을 창립정신으로 내세운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3월 우리나라 최초 지점인 인천을 비롯해 개성에도 지점을 설치하는 등 업무 확장에 적극 나섰다. 초대 은행장은 황실재정 담당 대신인 민병석이었고, 2대 은행장은 영친왕 이근이다.
대한천일은행은 예금과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일반은행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조세금 취급, 화폐 발행과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1925년에 대동은행(大同銀行)을, 1928년에 삼남은행(三南銀行)을 흡수합병하면서 발전했다. 광복한 뒤 한국상업은행으로 개칭했다. 1999년 1월 한일은행과 합병, 한빛은행이 됐다가 이름을 우리은행으로 바꿨다.
창립 이래 117년에 이르는 역사만큼이나 우리은행이 가진 문화재와 기록물, 기념물도 풍부하다. 근대금융의 탄생과 영업활동 내용을 알 수 있는 창립 및 회계문서 일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건물인 광통관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창립 관련 문서 및 회계문서 일괄
대한천일은행 창립 관련 문서 및 회계문서 일괄은 근대은행의 창립과정과 회계처리 방식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다른 은행의 창립 관련 문서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업창립문서인 ‘대한천일은행 창립청원서 및 인가서’는 대한천일은행 창립 당시 정부 관료와 상인 등 6명이 연서한 설립청원서 및 탁지부(현재 금융위원회) 인가서다. 우리은행의 창립 역사를 증명해주는 1급 유물이다.
청원서를 비롯해 황태자인 영친왕이 1대 주주로 기록돼 황실은행으로서의 성격을 입증하는 주주명부인 좌목, 공첩문안(공문서 중 보존해야 할 문안)과 은행의 주요 업무내용을 알 수 있는 정관, 탁지부가 인가한 개성·인천지점의 창립청원서 등 대한천일은행 창립 관련 문서 일괄 12건 18점은 한국 근대은행 및 주식회사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고려시대 개성상인이 주로 사용했던 전통 회계방식인 ‘송도사개치부’로 작성한 각종 은행 장부인 회계책, 장책, 정일기 등 대한천일은행 회계문서 일괄 7건 57점은 국내에 현존하는 송도사개치부 복식회계문서 중 가장 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정기임금총부 등 기타 보조장부도 보존돼 있어 전통 회계사 및 구한말 사회경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총 19건 75점의 창립 및 회계 관련 유물은 2009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1호로 지정됐다.
○광통관
남대문과 을지로 사이인 중구 남대문로 1가 19에 있는 광통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이다. 광통관은 대한천일은행이 조선의 대표 은행으로 발전한 것을 기념, 1909년 5월 준공된 뒤 15년 동안 본점 건물로 사용됐다. 여러 시기의 건축 양식에 영향을 받아 벽돌과 석재 등으로 지어졌다. 전면은 이오니아식 주두(柱頭)와 필래스터(붙임기둥)로 장식됐다. 중앙부에는 페디먼트(고대 그리스 신전의 경사진 지붕과 지붕 측면에 있는 삼각벽)가, 건물 양쪽에는 바로크풍의 돔이 있었으나 1914년 2월 화재로 소실됐다. 1915년 복구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됐다.
광통관 1층은 대한천일은행과 어음조합으로, 2층은 회의실과 대기실 등으로 사용됐다. 여성만 이용할 수 있는 숙녀금고를 1959년 개설하면서 광통관 좌측 출입문을 여성용으로 배정했다. 사무공간이 부족해 부속건물을 증축하고 3층으로 개축했다. 2002년 3월 서울시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됐다. 현재 우리은행 종로지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문화재 및 기록물, 기념물 등 약 2만8000점의 금융 관련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유물 보관에 최적화된 보존 및 보안시스템을 갖춘 333㎡ 규모의 수장고와 1320㎡ 규모의 박물관에서 문화재를 보관, 전시 중이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광통관을 저금통 모형으로 만들어 보는 체험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의 역사를 이해하는 ‘어린이 체험교실’을 방학에 열고 있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
금융으로 사회와 국민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금융’을 창립정신으로 내세운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3월 우리나라 최초 지점인 인천을 비롯해 개성에도 지점을 설치하는 등 업무 확장에 적극 나섰다. 초대 은행장은 황실재정 담당 대신인 민병석이었고, 2대 은행장은 영친왕 이근이다.
대한천일은행은 예금과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일반은행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조세금 취급, 화폐 발행과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1925년에 대동은행(大同銀行)을, 1928년에 삼남은행(三南銀行)을 흡수합병하면서 발전했다. 광복한 뒤 한국상업은행으로 개칭했다. 1999년 1월 한일은행과 합병, 한빛은행이 됐다가 이름을 우리은행으로 바꿨다.
창립 이래 117년에 이르는 역사만큼이나 우리은행이 가진 문화재와 기록물, 기념물도 풍부하다. 근대금융의 탄생과 영업활동 내용을 알 수 있는 창립 및 회계문서 일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건물인 광통관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창립 관련 문서 및 회계문서 일괄
대한천일은행 창립 관련 문서 및 회계문서 일괄은 근대은행의 창립과정과 회계처리 방식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다른 은행의 창립 관련 문서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업창립문서인 ‘대한천일은행 창립청원서 및 인가서’는 대한천일은행 창립 당시 정부 관료와 상인 등 6명이 연서한 설립청원서 및 탁지부(현재 금융위원회) 인가서다. 우리은행의 창립 역사를 증명해주는 1급 유물이다.
청원서를 비롯해 황태자인 영친왕이 1대 주주로 기록돼 황실은행으로서의 성격을 입증하는 주주명부인 좌목, 공첩문안(공문서 중 보존해야 할 문안)과 은행의 주요 업무내용을 알 수 있는 정관, 탁지부가 인가한 개성·인천지점의 창립청원서 등 대한천일은행 창립 관련 문서 일괄 12건 18점은 한국 근대은행 및 주식회사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고려시대 개성상인이 주로 사용했던 전통 회계방식인 ‘송도사개치부’로 작성한 각종 은행 장부인 회계책, 장책, 정일기 등 대한천일은행 회계문서 일괄 7건 57점은 국내에 현존하는 송도사개치부 복식회계문서 중 가장 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정기임금총부 등 기타 보조장부도 보존돼 있어 전통 회계사 및 구한말 사회경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총 19건 75점의 창립 및 회계 관련 유물은 2009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1호로 지정됐다.
○광통관
남대문과 을지로 사이인 중구 남대문로 1가 19에 있는 광통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이다. 광통관은 대한천일은행이 조선의 대표 은행으로 발전한 것을 기념, 1909년 5월 준공된 뒤 15년 동안 본점 건물로 사용됐다. 여러 시기의 건축 양식에 영향을 받아 벽돌과 석재 등으로 지어졌다. 전면은 이오니아식 주두(柱頭)와 필래스터(붙임기둥)로 장식됐다. 중앙부에는 페디먼트(고대 그리스 신전의 경사진 지붕과 지붕 측면에 있는 삼각벽)가, 건물 양쪽에는 바로크풍의 돔이 있었으나 1914년 2월 화재로 소실됐다. 1915년 복구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됐다.
광통관 1층은 대한천일은행과 어음조합으로, 2층은 회의실과 대기실 등으로 사용됐다. 여성만 이용할 수 있는 숙녀금고를 1959년 개설하면서 광통관 좌측 출입문을 여성용으로 배정했다. 사무공간이 부족해 부속건물을 증축하고 3층으로 개축했다. 2002년 3월 서울시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됐다. 현재 우리은행 종로지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문화재 및 기록물, 기념물 등 약 2만8000점의 금융 관련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유물 보관에 최적화된 보존 및 보안시스템을 갖춘 333㎡ 규모의 수장고와 1320㎡ 규모의 박물관에서 문화재를 보관, 전시 중이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광통관을 저금통 모형으로 만들어 보는 체험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의 역사를 이해하는 ‘어린이 체험교실’을 방학에 열고 있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