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세례 받아도 좋아! > ‘태국 골프의 아이콘’ 에리야 쭈타누깐이 22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LPGA투어 킹스밀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동료 선수에게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 물세례 받아도 좋아! > ‘태국 골프의 아이콘’ 에리야 쭈타누깐이 22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LPGA투어 킹스밀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동료 선수에게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의 킹스밀리조트(파71·6379야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킹스밀챔피언십 4라운드 18번홀 마지막 파 퍼팅을 앞둔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담담했다. 실패하면 연장, 성공하면 우승이란 절체절명의 상황을 무색하게 하는 평온이었다. 공이 굴러갈 경사를 살펴보던 그의 얼굴에선 미소마저 흘렀다.

이달 초 LPGA 요코하마타이어클래식에서 생애 첫 승을 신고한 에리야 쭈타누깐(20·태국)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다. 그는 1.5m짜리 챔피언 퍼팅을 거침없이 홀로 밀어넣은 뒤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천재 리디아 고(20)에 이은 시즌 두 번째 2개 대회 연승자로 쭈타누깐의 이름이 기록됐다.

○‘깨어나는 괴물’ 쭈타누깐 “골프 즐겼다”

그는 짧은 퍼팅을 앞에 두고 손을 덜덜 떨던 ‘역전패의 상징’이 아니었다. 4라운드 내내 60타대 타수를 지켜내며 ‘태국 골프의 아이콘’임을 확실히 입증했다. 최종합계 14언더파. 마지막날까지 3퍼트를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안정적 퍼트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이번 대회 평균 퍼트 수(28.75)는 LPGA투어 올 시즌 ‘톱3’에 드는 발군의 기량이다.

게다가 그는 3번 우드로 줄곧 티샷했다. 그런데도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가 269.5야드로 찍혔다. LPGA투어 10위권의 장타를 때려댔지만 페어웨이 안착률이 86%까지 올랐다. 장타와 정교함이 동시에 가동되는 모양새다.

이보다 두드러진 게 여유다. 쭈타누깐은 경기가 끝난 뒤 “지옥을 견뎌내며 간절히 원하던 첫 승을 이뤘기 때문에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골프가 즐거웠을 뿐 연승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퍼팅 때 긴장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손이 사시나무 떨듯 하진 않았다”고 했다. 두려움과 강박이 사라진 자리를 여유와 자신감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쭈타누깐을 ‘잠자는 괴물’로 봤다. 거침없는 샷, 컴퓨터 퍼팅 등 실력만 놓고 보면 ‘미국 여자골프의 상징’ 렉시 톰슨과 경쟁할 만한 LPGA의 잠재적 지배자란 평도 많았다. 임경빈 프로(JTBC해설위원)는 “우승하는 법을 알게 된 이상 추가 우승은 갈수록 쉬워질 것”이라며 “또 다른 괴물이 잠을 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쭈타누깐은 태국 올림픽 출전 순위 1위도 확고히 했다. 태국의 또 다른 강자 폰아농 펫람(27·볼빅)이 지난 3월 HSBC위민스챔피언스 준우승에 이어 모처럼 공동 5위로 선전해 태국 골프의 급부상을 거들었다.

○K골프 올림픽 싹쓸이 전략 ‘먹구름’

한국은 오는 8월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골프 최강국으로 꼽힌다. 금·은·동 싹쓸이가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이대로는 악재 투성이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들의 활약 소식이 가물가물하다. 손가락 부상으로 한 달간 투어를 떠났다가 돌아온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부상이 도지면서 대회 2라운드를 기권했다. 2주간의 휴식 끝에 돌아온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기량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전날 9언더파 62타를 치며 3라운드 공동 2위에 올라 첫 승을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날엔 1오버파 72타를 치며 공동 10위로 주저앉았다. 하루 사이에 10타 차 롤러코스터를 탔다. 비바람이 부는 악조건에서 6타를 줄여 단독 2위에 오른 호주 동포 오수현(20)과 7타를 줄여 공동 5위에 오른 허미정(27·하나금융그룹)을 보면 날씨 탓만 할 수도 없는 불안정한 성적이다.

그나마 ‘올림픽 빅4’ 가운데 한 명인 김세영(24·미래에셋)이 마지막날 5타를 덜어내는 분전 끝에 공동 3위에 올라 K골프의 체면을 세웠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