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묻지마 범죄' 60%는 정신질환자 소행…"나도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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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묻지마 살인 일파만파
작년 5대 범죄 저지른 정신질환자 4517명
처벌 땐 심신장애로 감형…고의로 악용하는 사례도
"선진국처럼 정신질환 범죄자, 구금 또는 지속 관리해야"
작년 5대 범죄 저지른 정신질환자 4517명
처벌 땐 심신장애로 감형…고의로 악용하는 사례도
"선진국처럼 정신질환 범죄자, 구금 또는 지속 관리해야"
“정신병자가 언제 덮칠지 모르는 세상이라니….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무서워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를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주점 공중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4)는 정신분열증 환자다. 김씨를 면담한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심각한 정신분열증으로 여성에 대한 반감과 피해망상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08년부터 네 차례 입원한 병력이 있는 피의자는 지난 1월 퇴원한 이후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관리했다면 ‘묻지마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질환자 강력범죄 ‘갈수록 태산’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중대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4517명이었다. 2012년 3314명에서 매년 300~500명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보면 올해 정신질환 강력 범죄자가 5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간·강제추행 등 성범죄자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성범죄자는 450여명으로 3년 새 50%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살인을 저지른 정신질환자도 66명으로 2012년(65명)보다 늘었다.
‘묻지마 범죄’ 상당수가 정신질환자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 범죄분석요원이 지난 10년간 발생한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21건을 분석한 결과 13건(62%)이 정신질환자의 소행이었다. 상당수는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2010년 노인 살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부산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동네 쉼터에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던 90세 할머니의 가슴과 등, 옆구리를 아무 이유도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는 범행 전 1년 동안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타인을 폭행하고 주택가에서 라이터로 불을 지르려고 했다. 상습적으로 자해를 시도한 피의자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 살인 사건이 날 때까지 경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선진국처럼 체계적 관리 시스템 필요”
경찰 내부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발견해도 선별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경찰관이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 일선 경찰관이 개인적 판단으로 정신질환자를 구별해야 하는 데다 보호 조치라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찰관이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19대 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찰관이 정신질환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게 됐지만 정신병자를 선별·관리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이상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선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미국 경찰은 범죄가 우려되는 정신질환자를 정해진 세부 지표에 따라 선별한다. 위급 상황에선 병원에서 전문 의료인의 치료를 받도록 하는 ‘단기 구금’을 명령할 수 있다. 캐나다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 정신질환자는 경찰이 전문 의료기관에 인계하고 있다.
정신질환 면죄부 논란
정신질환을 동반한 강력 범죄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네티즌 사이에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도 “가해자의 정신병력이 면죄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형법 제10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술 등으로 심신이 미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한다.
2008년 8세 여자 어린이를 탈장이 될 만큼 끔찍한 방법으로 성폭행한 조두순도 ‘만취에 따른 심신 미약’이란 이유로 무기징역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받았다. 지난해 9월 같은 요양원에 있던 동료를 살해한 중증 치매 노인 이모씨(80)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가 정신병적 장애로 의사결정능력 등이 없었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선 고의로 범죄를 저질러놓고 정신병 등의 심신 장애를 감경 사유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 범죄에 대해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선진국과 대비된다. 프랑스 마르세유 법원은 2004년 조엘 게야르(43)가 병원을 탈출해 이웃집 할머니를 도끼로 살해하자 그를 면담한 의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게야르가 범행 이전에도 방화, 살인미수 등으로 병원에 강제입원되는 등 위험성이 심각했지만 의사가 사건 발생 전까지 그를 진료하면서도 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심은지/마지혜 기자 summit@hankyung.com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를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주점 공중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4)는 정신분열증 환자다. 김씨를 면담한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심각한 정신분열증으로 여성에 대한 반감과 피해망상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08년부터 네 차례 입원한 병력이 있는 피의자는 지난 1월 퇴원한 이후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관리했다면 ‘묻지마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질환자 강력범죄 ‘갈수록 태산’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중대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4517명이었다. 2012년 3314명에서 매년 300~500명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보면 올해 정신질환 강력 범죄자가 5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간·강제추행 등 성범죄자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성범죄자는 450여명으로 3년 새 50%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살인을 저지른 정신질환자도 66명으로 2012년(65명)보다 늘었다.
‘묻지마 범죄’ 상당수가 정신질환자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 범죄분석요원이 지난 10년간 발생한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21건을 분석한 결과 13건(62%)이 정신질환자의 소행이었다. 상당수는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2010년 노인 살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부산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동네 쉼터에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던 90세 할머니의 가슴과 등, 옆구리를 아무 이유도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는 범행 전 1년 동안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타인을 폭행하고 주택가에서 라이터로 불을 지르려고 했다. 상습적으로 자해를 시도한 피의자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 살인 사건이 날 때까지 경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선진국처럼 체계적 관리 시스템 필요”
경찰 내부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발견해도 선별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경찰관이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 일선 경찰관이 개인적 판단으로 정신질환자를 구별해야 하는 데다 보호 조치라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찰관이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19대 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찰관이 정신질환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게 됐지만 정신병자를 선별·관리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이상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선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미국 경찰은 범죄가 우려되는 정신질환자를 정해진 세부 지표에 따라 선별한다. 위급 상황에선 병원에서 전문 의료인의 치료를 받도록 하는 ‘단기 구금’을 명령할 수 있다. 캐나다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 정신질환자는 경찰이 전문 의료기관에 인계하고 있다.
정신질환 면죄부 논란
정신질환을 동반한 강력 범죄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네티즌 사이에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도 “가해자의 정신병력이 면죄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형법 제10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술 등으로 심신이 미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한다.
2008년 8세 여자 어린이를 탈장이 될 만큼 끔찍한 방법으로 성폭행한 조두순도 ‘만취에 따른 심신 미약’이란 이유로 무기징역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받았다. 지난해 9월 같은 요양원에 있던 동료를 살해한 중증 치매 노인 이모씨(80)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가 정신병적 장애로 의사결정능력 등이 없었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선 고의로 범죄를 저질러놓고 정신병 등의 심신 장애를 감경 사유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 범죄에 대해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선진국과 대비된다. 프랑스 마르세유 법원은 2004년 조엘 게야르(43)가 병원을 탈출해 이웃집 할머니를 도끼로 살해하자 그를 면담한 의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게야르가 범행 이전에도 방화, 살인미수 등으로 병원에 강제입원되는 등 위험성이 심각했지만 의사가 사건 발생 전까지 그를 진료하면서도 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심은지/마지혜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