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지역학 까막눈'이 진짜 위기다
이란을 다녀온 통상전문가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1200~1300년대 몽골제국에 관한 기록물을 구하려면 몽골이 아니라 이란에 가야 한다더라.” 설명은 이랬다. 800년 전 아시아 동쪽 끝에서 유럽 일부까지 점령을 끝낸 몽골제국은 점령지 민족들을 등급을 매겨서 부렸다. ‘1등 민족’ 몽골인에 이어 페르시아인을 2등급, 고려인은 3등급, 중국 한족(漢族)은 4등급 민족으로 분류했다.

몽골 황실은 문화와 지식수준이 높았던 페르시아인들에게 학문 연구를 주로 맡겼다. 상당수 자료가 페르시아어로 쓰여진 채 이란에 남게 된 배경이다. 이란이 주변 아랍국은 물론 서방국가들에 쉽사리 곁을 열어주지 않으며 ‘자존감’을 세워 온 데는 역사 곳곳에 이런 자부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수천년 역사에 수메르와 페르시아제국 시절의 유산, 오랜 상인(商人) 전통까지 갖춘 이란인들과 몇 번 만나 비즈니스를 하거나 세미나를 한 정도로 “이란을 잘 안다”고 해선 곤란할 것 같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없던 길을 걸어가면서 만들어낸다’는 뜻의 장자(莊子)에 나오는 구절을 박근혜 대통령이 인용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란에서의 비즈니스 외교 성과를 기업인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대통령은 30개 프로젝트에서 최대 456억달러(약 52조원) 규모 수주를 이끌어낸 이란을 새 시장 개척의 모델로 제시했다. 제2, 제3의 이란 시장을 열어내 미국 중국 등에 편중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달라는 당부였다.

먼저 짚어 봐야 할 게 있다. 새 시장을 온전하게 개척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역학적 지식기반’을 우리나라가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교류 대상국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파악하지 않고서는 의미 있는 진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한 상품교역 위주의 구조에 머물기 십상이다.

‘도행지이성’의 첫 번째 검증 포인트는 우리나라가 이란을 두고 ‘새 길 개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알고 있고, 전문가집단을 갖추고 있는지다.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현직 외교관 가운데 이란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때 현지 동포를 통역으로 임시 채용해야 했다. 이란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지, 뒤통수가 따갑다. 서울 강남의 번화가를 39년 전에 ‘테헤란로’로 이름 붙였을 만큼 두 나라가 오랜 인연을 이어 왔다고 자랑하지나 않았으면 모를까, ‘우물 안 지식’에 갇힌 한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전 세계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나라, 그래서 해외 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새 시장을 개척하며 살아나가야 하는 한국에 지역학 연구는 생존의 문제다. 그런 한국에서 ‘지역학’은 명칭부터가 생소할 정도로 찬밥 신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서울대 국제지역원 등이 있지만 경제와 통상·외교 등으로 연구 분야가 편중돼 있다. “사회·문화·역사, 인문학 쪽 세 부문은 방치하다시피 돼 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세계 최대 시장이자 이웃 나라인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지역학적 무지(無知)가 정말 심각하다. 31개 성(省)·시(市),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14억 인구의 중국을 하나로 뭉뚱그려 파악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동남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같은 ‘미래 지역’ 연구를 손 놓다 시피한 것도 큰 문제다. 아프리카에는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봉사와 인턴 등으로 나가 있다. 이들이 얻어서 돌아오는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교육부건 어디건 한 곳도 없다.”

당장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학 연구를 ‘까막눈’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인문학계 스스로도 방향을 재설정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 무작정 문과를 줄이고 이공계를 키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