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사업방식 차별화로 시장 흔드는 신흥 제조 기업들
프리미엄 스마트폰만 고수하던 애플이 최근 자존심을 꺾고 399달러대 중저가 제품을 내놨다. 100년 전통의 미국 GE 가전도 올해 중국 하이얼에 54억달러에 팔렸다. 이는 혁신 정체로 전통 제조 기업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런 틈을 비집고 새로운 신흥 제조 기업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폰의 샤오미, TV의 비지오, 드론의 DJI, 액션캠의 고프로, 가상현실의 오큘러스, 전기차의 테슬라 등 다양한 산업에서 신흥기업들이 세를 확대하고 있다.

신흥 제조업체 각각은 작지만, 수가 많기에 모으면 규모가 상당하다. TV산업에서 한국 일본의 전통 가전 명가들을 제외한 신흥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이미 47%에 육박한다. 게다가 한 업체가 망해도 그 자리를 금세 다른 기업이 생겨나 채운다. 이들의 사업 확대에 기존 업체들이 은근히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그렇다면 신흥 제조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로 차별화된 사업방식을 통해 저비용 사업체제를 구축했고, 둘째로 시장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고객에 대한 핵심 가치 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흥 제조 기업들은 디지털, 인터넷 기반의 산업 생태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통념에서 벗어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먼저 조합적, 개방형, 적응형 연구개발(R&D)을 통해 제품 개발 비용과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샤오미가 최근 1~2년 사이 웨어러블 기기, 공기청정기, 세그웨이까지 확장한 비결은 외부의 전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적극 연계했기 때문이다.

또한 신흥 제조 기업들은 공급 사슬을 탐색 연결형, 이삭줍기 식으로 구성해 재료비도 최소화하고 있다. 알리바바나 중국 현지 인맥을 통해 다른 산업 및 다른 완성품 업체에서 이미 검증된 표준화, 범용화 부품들을 찾아 조달하다 보니 저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은 제조에서 자산 경량화 생산체제를 추구한다. 자체 제조 투자 대신 외부 제조전문업체(EMS)에 위탁해 생산하다 보니 고정비도 최소화되고 시장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비지오는 TV를 암트랜과 폭스콘 등에서, 고프로는 액션캠을 대만 스카이라이트, 치코니 등에서 생산해 판매한다. 게다가 충성 고객을 자발적 홍보원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저비용 유통 채널을 개척하는 등 역발상 기법을 통해 고효율 마케팅을 구현하고 있다. 테슬라는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의 적극적 언론 활동과 팬들의 입소문을 활용해 매스미디어 광고 없이도 크게 유명해졌다.

신흥 제조 기업들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단지 저원가 경쟁력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 사용자들의 니즈와 애로 사항을 정확히 읽어내고 이를 해결한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과거 드론은 조종 및 항공 촬영상의 어려움이, 가상현실기기는 어지럼과 착용상 불편함이 대중화의 걸림돌이었다. 드론에서 DJI, 가상현실기기에서 오큘러스는 독특한 기술적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고, 가격까지 500~600달러대로 낮춘 제품을 선보였기에 초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저비용 사업체제와 고객에 대한 핵심 가치 강화로 무장한 신흥 제조 기업들은 더 이상 ‘추격자(follower)’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시장 및 사업의 경쟁 규칙을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 제조 기업 역시 신진 경쟁자의 출현에 대응해 새로운 형태의 혁신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GE, 캐논, 지멘스, 보쉬 등은 기민성, 유연성,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줄이고,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제조 역량을 재강화하는 등 다각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군살을 줄이고, 역량을 모으며, 미래 씨앗을 뿌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성완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cagecho@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