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의 이유있는 순항] 김홍국의 '1조 베팅' 1년…팬오션, 연 2000억 흑자 '알짜 해운사'로
“팬오션을 인수함으로써 미국 카길과 같은 곡물 메이저로 커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림그룹이 팬오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2014년 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사진)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 회장은 “기존 축산·가공 사업부문에다 곡물 유통사업까지 거느리게 됐다”며 “앞으로 팬오션의 매출을 2조원 이상 늘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6월 1조원에 팬오션을 인수한 김 회장의 바람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이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1위 벌크선사인 팬오션은 작년 영업이익 2294억원을 기록해 국내 최고 수익성을 내는 해운사로 올라섰다. 매출 역시 작년 1조8000억원대를 넘어섰고 올해 2조1000억원대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팬오션은 작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졸업하면서 고비용 장기 운송 계약을 떨어내 부채비율이 한때 2000% 이상에서 80% 밑으로 떨어졌다.
[팬오션의 이유있는 순항] 김홍국의 '1조 베팅' 1년…팬오션, 연 2000억 흑자 '알짜 해운사'로
◆바닥친 BDI, ‘버틸 힘’ 갖춰

팬오션은 벌크선 시황이 사상 최악이던 지난 1분기에도 영업이익 을 기록해 9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팬오션 주가는 지난 4일 전날보다 2.15% 내린 3870원에 장을 마쳤다. 하지만 올해 최저점인 2월17일 2770원에 비하면 39% 오른 것이다.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가 지난 2월10일 최저점인 220포인트까지 떨어졌지만 두 달여 만에 600포인트 선까지 오르자 다시 상승세를 탔다. 현재 팬오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7배다. 증권사들이 추정하는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해와 비슷한 2053억원으로, 벌크선 운임 등락 여부에 달렸다는 평가다. BDI가 가파른 회복세를 보일지, 답보 상태일지는 엇갈린다.

팬오션 측은 두 시나리오 중 어떤 국면에서도 이익을 볼 구조를 이미 갖췄다고 자신하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이미 해냈기 때문이다. 회사가 운용 중인 선박 193척 중 사선(직접 보유한 배)이 79척, 용선(빌린 배)은 114척이다. 과거 최대 500여척을 운용하던 것에 비해 고비용 용선을 대폭 떨어냈다. 그중 장기 운송 계약에 묶여 있는 사선이 30척으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아 BDI 시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글로벌 선사들이 BDI 1000포인트 내외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어, 시황이 나쁘면 외려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구조다.

회사 측은 해운 경기 개선에도 대비하고 있다. 프랑스 기반 글로벌 선박중개업체인 BRS는 올해 세계에서 6000만DWT(실을 수 있는 최대 톤수)의 선박이 해체되고, 새로 주문되는 선박은 4000만DWT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도식 팬오션 경영기획실장은 “폐선과 신규 발주 선박 규모를 볼 때 내년 후반기께 상선 공급 과잉이 해소될 여지가 있다”며 “현재 배 가격도 낮은 상황이라 중고선을 매입할지 새 배를 발주할지를 두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림 인수 시너지’ 본격화

투자 여력도 충분하다. 현재 팬오션의 부채비율은 77.44%에 불과하다. 최대 주주인 제일홀딩스 상장과 맞물려 신용평가사와 회사채 신용등급을 받기 위한 협의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오션은 시황 회복 전망에 맞춰 서서히 운영 선대를 늘려간다는 전략이다. STX그룹 시절 외형 성장을 통한 매출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새로운 오너인 하림그룹 측에선 ‘순익을 늘리는 경영’을 주문하고 있다.

하림의 닭고기 유통과 직접 연관된 곡물 사업도 규모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닭고기와 함께 사료사업이 주력인 하림그룹의 연간 곡물 구매액만 1조원이고 다른 기업과의 공동 구매량까지 합하면 2조원가량”이라며 하림그룹과 팬오션 간 시너지를 강조한 바 있다. 팬오션은 올해에만 7척, 40만t 분량의 곡물을 국내에 들여왔다. 최근 글로벌 주요 항구에서 곡물 엘리베이터(저장용 설비)를 사용하기 위해 일본 상사들과 논의하고 있다.

김대훈/안대규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