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밀림의 풍경이 이채로운 도이인타논 트레킹 코스
원시밀림의 풍경이 이채로운 도이인타논 트레킹 코스
[여행의 향기] '북방의 장미' 태국 치앙마이, 때 묻지 않은 정글 속 트레킹 집라인 즐기다보면 어느새 나도 '타잔'
태국의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북방의 장미’라고 불린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고유의 문화가 조화를 이뤄 장미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이다. 별칭 그대로 치앙마이에는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을 비롯해 수많은 산과 정글 등이 가득하다. 여기에 더해 화려한 축제와 고산족의 이색적인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쪽빛 바다도, 도회적인 화려함도 없지만 마음이 먼저 평화를 얻는 곳이 치앙마이다.

100만뙈기 논으로 번성했던 고대도시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다. 13세기 란나(Lanna) 왕국을 세운 맹라이 왕이 치앙마이를 수도로 삼으면서 도시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태국어로 ‘란’은 ‘100만’을 뜻하고 ‘나’는 ‘논(沓)’을 이른다. 란나 왕국은 100만뙈기의 논을 가질 정도로 번성했지만 미얀마의 침공을 받아 속국이 됐다가 1932년에 태국의 영토로 흡수됐다.

란나왕국의 흔적은 구도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래 란나왕국의 수도는 인근 치앙라이였다. 미얀마의 침공에 시달리다가 이곳 치앙마이로 수도를 옮겼다. 치앙마이란 태국어로 ‘신도시’라는 뜻. 치앙마이의 구도심은 직사각형의 성채로 둘러싸여 있고, 성채 밖에다 수로를 만들어 해자(垓子)를 팠다. 성벽은 일부 복원된 곳을 제외하고는 다 무너졌지만 해자는 아직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다.

치앙마이의 구시가지 일대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소담스런 풍경이다. 구시가지는 사각형의 성곽을 중심에 두고 ‘쁘라뚜’로 불리는 5개의 성문이 나 있다. 성문 밖으로는 일방통행길이 이어지는데 치앙마이를 다니다 보면 일방통행길을 한 번쯤은 거치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도시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면 님만 해민으로 가는 것이 좋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 님만 해민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치앙마이의 가로수길’로 통한다. 태국 북부 산악지대에서 재배하는 원두커피를 사용하며, 방콕까지 진출한 ‘와위 커피(Wawee Coffee)’ 본점도 이곳에 있다. 탁 트인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치앙마이 대표 사원 왓 체디루앙과 왓 프라탓
황금빛 대탑이 인상적인 왓 프라탑
황금빛 대탑이 인상적인 왓 프라탑
구시가지 안에는 1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원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 왓 체디루앙은 1401년 건립된 고찰로, 한때 방콕 왓 프라깨우의 에메랄드 불상을 모셨던 유서 깊은 사원이다. 1545년 지진으로 본당의 윗부분이 훼손돼 현재까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본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높이 42m의 벽돌 불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 마당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앳된 동자승들과 마주치는 것조차 흥미롭다.
태국의 유서 깊은 사원 왓 체디루앙
태국의 유서 깊은 사원 왓 체디루앙

왓 체디루앙은 낮에 봐도 아름답지만 교교한 달빛 속에서 둘러보는 것이 더 운치 있다.

치앙마이의 상징인 왓 프라탓은 도이수텝산 중턱의 해발 1000m에 서 있어 태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사원으로 꼽힌다.
그림을 그리는 코끼리들
그림을 그리는 코끼리들
예전에는 300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지만 최근 케이블카가 생긴 덕분에 손쉽게 왓 프라탓의 상징인 황금 대형 불탑을 만날 수 있다. 1383년 세운 왓 프라탓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옛 란나왕국 시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흰 코끼리 등에 싣고 탑을 세울 자리를 찾았는데 코끼리가 이곳 산정에 올라 세 바퀴를 돌고 그만 죽었고 그 자리에 황금 불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화려한 금빛 탑이며 두 개의 대웅전 장식이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특히 해가 살짝 비끼는 오후 나절에는 탑이며 사원의 치장한 황금빛이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한다.
목에 링을 끼운 카렌족 어린이
목에 링을 끼운 카렌족 어린이
치앙마이는 욕망과 환락을 찾아보기 어려운 순박한 곳이지만 내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도중 코끼리 조련사들이 보여준 잔인한 매질이었다. 길을 조금이라도 잘못 들면 사정없이 피켈은 코끼리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코끼리는 축구공을 차고 코에 붓을 매달고 기막힌 그림을 그려 찬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지막지한 매질에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결과라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긴 목에 링을 찬 카렌족들이 구경거리가 돼 있는 모습도 유쾌하지 않았다.

영화 아바타의 풍경 같은 잉카트레일

치앙마이 여행의 백미는 트레킹이다. 치앙마이를 패키지 투어로 갔다면 기껏해야 정글 숲속을 잠깐 걷고 코끼리 타기와 계곡 래프팅을 즐기는 정도겠지만 진짜배기 트레킹은 최소 1박2일에서 1주일짜리까지 있다. 서양에서 온 여행자들은 긴 시간을 투자해서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을 즐긴다. 짧은 여행 일정 때문에 장기 트레킹을 할 수 없다면 둘레길이라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치앙마이에 온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트레킹 코스는 도이(태국어로 ‘높다’는 뜻) 인타논산이다.

고산족 복장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고산족 복장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해발 2565m의 도이인타논 산은 태국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여기며 신성시하는 산이다. 산 중턱까지 버스를 타고 가다 썽태우(Songthaew)라고 불리는 삼륜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시간 이상을 오르니 정상에 닿았다. 정상이라고 하지만 시멘트로 엉성하게 만든 표지석만 있을 뿐 온통 숲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산 아래 정상을 볼 수가 없다.
정상 아래쪽에는 태국 국왕과 왕비의 60회 생일을 기념해 1987년과 1992년에 세운 두 기의 탑이 있는 공원이 있다. 산정 가까이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탑은 태국 사람들에게는 국왕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일대의 경관을 바라보는 훌륭한 전망대다. 맑은 날이면 여기서 첩첩이 이어진 2000m급 봉우리들이 만들어낸 태국 북부지역의 고산 능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공원 바로 아래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니 원시림이 펼쳐진다. 나무 데크로 잘 조성된 길은 2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 같은 트레킹 코스(잉카 트레일)다. 길을 따라가면 온통 진초록 이끼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가지마다 열대식물의 덩굴이 늘어져 있다. 마치 영화 ‘아바타’ 속의 환상적인 숲으로 빠져들어간 것만 같다.

향긋한 커피와 박진감 넘치는 집라인의 매력

직접 재배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고산족 여인
직접 재배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고산족 여인
숲을 나와 산중턱까지 내려와서 본격적인 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길이 평평하고, 작렬하는 햇살은 쭉쭉 뻗은 나무들이 가려줘서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랭이 논과 작은 폭포와 고산족 마을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고산족 마을에서는 커피향이 진하게 풍긴다. 예전에 이 지역에서는 주로 양귀비를 재배했다고 한다. 지금은 쫓겨났지만 탁신 정권 시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농민들은 양귀비 대신 커피 재배를 시작했다. 고산족 할머니는 직접 딴 커피를 건조하고 세척해서 무쇠솥에서 볶는다. 전통 방식으로 내린 커피의 첫맛은 강하고 그만큼 향도 진하다.

둘레길의 끝에는 70m 높이에서 부챗살을 펼치듯 우람하게 쏟아지는 베치라탄 폭포와 만나게 된다. 폭포 앞에 서면 거친 물살이 만들어내는 물보라로 온몸이 다 젖을 정도다.

치앙마이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 중 하나가 바로 집라인(zip line)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 연결된 외줄 하나로 치앙마이 우거진 정글 숲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드래곤 플라이트 집라인은 26개의 집라인 코스를 갖추고 있다. 코스 길이는 총 1300m며 2~3시간 정도 걸린다.

태국의 집라인
태국의 집라인
집라인을 타는 첫 코스는 산 중앙까지 올라가는 곳이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면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수십 미터 높이에서 외줄에 의지해 짜릿하게 하강할 때 발 아래로 우거진 숲이 보인다. 하강 속도는 제법 빠르다. 처음에는 살짝 무섭기도 하지만 여러 코스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주위도 살피면서 치앙마이 정글 전경도 즐길 여유가 생긴다.

집라인을 타는 것도 재미있지만 코스와 코스 사이로 이동할 때 느껴지는 바람의 살랑거림과 햇살이 일품이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메모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직항으로 6시간 걸린다. 치앙마이는 건기에는 밤 기온이 선선해 태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긴소매 옷을 준비해야 한다. 치앙마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2~2월 사이다. 치앙마이에는 미터기를 단 택시가 거의 없다. 시내 이동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나 정해진 노선 없이 승객을 태우는 승합버스 격인 썽태우를 이용해야 한다. 목적지를 제시하고 흥정으로 요금을 결정해야 하므로 좀 불편하긴 하지만, 툭툭이와 달리 썽태우는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나투어(hanatour.com)는 ‘치앙마이 5일’ 상품을 내놓았다. 5성급 호텔에 묵으며 코끼리 트레킹과 온천, 안마 등이 포함돼 있다. 76만9000원부터. 1577-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