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0시 서울 모처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TF) 첫 회의가 열린다. 회의엔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과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이 참석한다. 논의 안건은 세 가지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두 국책은행에 얼마만큼의 기업 구조조정 대비용 ‘실탄’을 넣을지, 어느 기관이 어떻게 지원할지, 어느 시점에 투입할지 등이다. 기재부와 금융위, 한은은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입을 모으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 위한 회의는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기관이 생각하는 자본확충 방법과 규모,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최대 10조…한국은행은 현금, 정부는 현물출자
(1) 필요 재원은 얼마
부실 단계별 10가지 시나리오…최소 2兆


TF의 첫 번째 안건은 ‘자본확충 규모’다. 금융위는 향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떠안아야 할 부실 규모를 예상 시나리오별로 정리해 제시할 예정이다.

대상 업종은 부실화 가능성이 큰 조선·해운 두 가지로 좁혔다. 이들 두 업종에 대한 국책은행의 여신은 약 43조원(산업은행 16조원, 수출입은행 27조원)이다. 금융위는 43조원의 국책은행 여신 가운데 기업별 부실이 커질 경우를 가정해 10여가지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본확충 규모가 결정될 전망이다.

금융위가 짠 시나리오에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거나 업황 부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담겼다. 1단계 시나리오에는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양대 해운사 부실을 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해운사 중 한 곳이 용선료 인하 협상에 실패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경우, 두 곳 모두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등을 가정했다는 의미다. 양대 해운사에 대한 국책은행 여신은 약 2조원이다. 두 곳 모두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이에 상응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조선업종과 관련, 정부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 채권단 자율협약 중인 중형 조선사의 법정관리 가능성, 지속적인 선박 수주 악화에 따른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손실 확대 가능성까지 시나리오에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책은행이 조선사에 제공한 수조원대의 선수금환급보증(RG)도 부실여신 범주에 넣어 살펴보기로 했다.

자본확충 규모는 10여가지 시나리오별로 최소 2조원에서 최대 10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몇 %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며 “현시점에서 어떤 업종·기업의 부실이 곪아터질지, 부실화 가능성은 몇 %인지에 대해 기재부·한은과 컨센서스(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2) 정부 재정지원 어떻게
한전·LH 지분, 국무회의 의결로 출자 가능


기재부는 예산실과 국고국 등을 중심으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필요한 재정 부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재정 부담 규모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현물출자와 현금출자를 병행해 단계적으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큰 방향은 정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고려 중인 첫 번째 방안은 공기업 지분을 현물출자해 국책은행 자기자본을 늘려주는 것이다. 현물출자는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하다. 한국전력(정부지분 18.2%, 장부가 5842억원)이나 LH(지분 83.7%, 장부가 22조9905억원) 한국도로공사(지분 84.8%, 장부가 25조5622억원) 주식 등이 우선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기재부는 다만 현물출자 규모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국책은행 현금출자를 별도 반영해 국회 동의를 얻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예산실 관계자는 “내년 예산안이 올해 말 국회 동의를 받으면 내년 초에 바로 국책은행 현금 증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는 국책은행 출자액 마련만을 목적으로 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구조조정은 법에서 정한 추경 편성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3) 韓銀의 지원 방식은
수출입銀 출자 최우선…産銀의 코코본드 매입


기재부와 금융위는 재정 부담과 함께 한국은행의 역할론도 요구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은도 일정 부분 수긍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일 “(한은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며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한은의 자본확충 방법으로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거나, 산업은행이 발행한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한은이 매입해주는 방안을 요청할 방침이다. 직접 출자는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별도 법 개정 절차를 밟지 않아도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다만 산업은행에 대한 직접출자는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은 14.28%로 당장 한은에 직접 출자를 요청할 정도로 시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산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한은이 코코본드를 매입하는 우회적 방법을 제시할 계획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9일 “산은의 코코본드를 한은이 사주는 방법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코코본드는 유사시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채권으로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은이 직접 출자하지 않더라도 산업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를 매입해주면 산은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코코본드 매입은 한은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선순위’로 검토하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은의 출자가 최우선순위고 한은법 개정을 통해 산은 코코본드 인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다음 순위”라고 했다.

이태명/이상열/김일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