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 구성해 자본확충 규모 산정키로…산은·수은 대응력 강화 취지
금융안정기금·한국판 양적완화는 사용 어려울 듯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필요재원 규모를 산정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자본확충 방법은 결국 정부의 재정지원, 곧 국민의 세금 투입과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 두 가지가 거론된다.

정부는 현물출자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대량 실업 등을 조건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의 재정 여건이 좋지 않고 한은도 발권력 동원에 부담감을 표하고 있어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 기재부·한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 착수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구조조정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기재부와 한은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이 기업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쓸 것이란 설명이다.

국책은행은 늘어난 자본을 토대로 부실채권을 처리할 여력을 갖게 된다.

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추가 손실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자본확충 규모에 대해 임 위원장은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필요한 재원 규모를 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를 예측해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산은과 수은의 재무상태부터 파악하고 구조조정 비용을 추계할 것"이라며 "조만간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은 관계자는 "앞으로 관련기관과 함께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을 논의하겠다"며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 아래서는 한은이 산업은행에 출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것은 가능하다.

재정 당국 관계자는 "현재 추경 편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구조조정으로 고용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추경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검토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산은·수은 비어가는 '탄창'…해운·조선 구조조정 본격화 시 충당금 부담

국책은행의 상황이 당장 구조조정을 추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작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산업은행이 14.2%, 수출입은행이 10.0% 수준이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현재 예정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며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적극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황 변화에 따라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충분한 기초체력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책은행의 여건이 좋지만은 않다.

'탄창'이 갈수록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여신 기업들의 건전성이 악화돼 지난해 3조2천억원의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고 1998년 이후 최대인 1조8천9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산은은 최근 3년 사이에 2조7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은이 떠안은 부실채권(NPL)은 7조3천270억원에 이른다.

수은도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당기순익이 411억원에 그쳤다.

2014년의 853억원에서 반으로 줄었다.

수은은 자기자본확충을 위해 지난해 정부로부터 1조1천300억원을 출자받았고 현재 산업은행과 5천억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논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책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조선, 해운 등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추가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는 약 21.7조원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약 84.3%인 18조3천억원이 특수은행의 몫이다.

수출입은행이 12조5천억원, 산업은행이 4조1천억원 규모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사에 대한 익스포저는 1조7천700억원이다.

이 가운데 77.6%(한진해운)와 68.4%(현대상선)가 특수은행 부담이다.

실제로 주요은행들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 위기나 불황에 시달리는 대기업들에 대한 신용위험도를 B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들을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C등급으로 이들 그룹을 평가하면 엄청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며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경우에는 부실이 심해도 대부분 B등급 정도로 분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다른 대안 없나…"금융안정기금 사용 불가"

구조조정 자금으로 '금융안정기금'을 활용 제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안정기금은 부실 판정을 받거나 부실 우려가 있어야만 투입할 수 있던 공적자금과 달리 정상적인 금융기관에 출자·대출·채무보증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기금은 2009년 6월 정책금융공사에 설치됐다가 현재 산업은행으로 이관됐으나, 설치 이후 지원 실적은 없었다.

이와 관련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안정기금은 현재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으로 실효돼 유효하지 않다"며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금유위 사무처장은 "법적 근거 여부를 떠나 금융안정기금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자본확충 필요할 때에 대비한 범용 기금 성격"이라며 "현재 구조조정이 문제되는 것은 국책은행이고 일반은행은 문제가 안 돼 금융안정기금은 검토할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여당의 '한국판 양적완화'는 힘들어졌다.

한국판 양적완화를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최근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면이 돼 입법이 어려워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박의래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