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압승에 경제민주화 '펌프질' 하는 서울시
서울시 A국장은 최근 시 경제진흥본부에서 공문을 한 통 받았다. ‘경제민주화와 관련이 있는 정책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쓰고, 서울시의 경제민주화 선언에 따른 대책이라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A국장은 “오래전부터 추진하던 정책도 앞으로는 경제민주화와 연관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자 서울시가 자체적인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알려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의식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 이후 정국에서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안팎의 해석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16개 실천 과제가 담긴 ‘경제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골목상권 보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불공정 거래관행 근절 △공정한 임대제도 정착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서울시는 경제민주화 기본 조례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과제는 민간 기업에 권고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상위법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기업에 강제할 수는 없다.

서울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직접 설득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담당 공무원이 야당 당선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경제민주화 관련법 개정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선언에 포함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대책이 대표적이다. 도심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치솟아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고 상가임대차 계약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는 권고를 넘어 야당 의원들에게 관련법 개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박 시장의 ‘의도’를 파악한 서울시 공무원들은 요즘 기존 경제민주화 선언 외에 별도의 경제민주화 관련 아이템을 찾느라 분주해졌다.

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각 실·국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