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여성 팀장이 직접 ISD 사건을 주도하는 첫 사례다. 국제중재 분야에서 여성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김 변호사뿐 아니라 각 로펌에서 여변호사들이 굵직한 중재 사건을 맡고 있다. 30대부터 40대까지 국제중재 분야에서 일하는 여변호사 층이 두터워지면서 국제중재 분야의 다음 세대는 여변호사가 중심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정교화 김앤장 변호사(44·28기)는 대한상사중재원,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등에서 중재인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리트(UAE) 부호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흐얀의 회사 ‘하노칼’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 소송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고 있다.
임수현 태평양 변호사(41·31기)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 소송에서 김갑유 변호사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청구 금액만 5조4820여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건이다. 임 변호사는 6월 최종 변론을 앞두고 숨 고르기 중이다.
이승민 세종 변호사(38·36기)는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엔 한국의 한 실리콘 제조업체가 중국 기업으로부터 1000억원대 소송을 당한 국제중재 사건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패소가 예상된 사건에서 꼼꼼한 사건 검토로 되레 100억원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이 사건은 국제중재 전문매체 ‘GAR’에서 소개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국제 중재 전문가로 도약한 女 변호사들
여성들이 국제 중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0년 이후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국제중재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변호사는 거의 없었다. 당시 여변호사 수 자체가 적은 이유도 있었다. 정 변호사는 “의뢰인들은 전형적인 50대 남성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전문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의뢰인을 만나기 전 수없이 관련 내용을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여성 국제 중재 변호사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매 순간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앞세웠다. 김세연 변호사는 “여성 국제중재 변호사의 활약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매번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사건을 경험할 수 있는 국제중재는 하루하루가 도전 그 자체”라며 “성별을 떠나 새로운 것에 두려워 말고 도전하는 정신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남성 변호사에 대한 선호를 뛰어넘고자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까지 챙기며 의뢰인의 신뢰를 얻었다”며 “남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출장이 잦은 국제 중재 변호사들에게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 또한 항상 고민거리다. 이변호사는 “임신 3개월일 때 중국 오지에 있는 분쟁 대상 기업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입덧 등이 심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며 “국제 중재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아 가정과 일의 균형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 변호사는 “8개월이 넘은 만삭의 몸으로 출장길에 나서니 비행기에서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겠단 서약서를 쓰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 국제 중재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여성 국제 중재 변호사들은 국제 중재 전문가를 꿈꾸는 여 변호사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영어를 잘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싸우고 이기는 분쟁 과정 자체를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국제 중재를 준비하면서 중재에만 집중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민법 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외국법도 쉽게 익힐 수 있다”며 “민법 공부를 좀 더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국제 중재에 뛰어드는 변호사들은 자신이 외국법정에서 멋지게 발언하는 모습을 먼저 상상하곤 한다”며 “당장 큰 역할을 맡지 못하더라도 작은 실무부터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도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