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현숙 교수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비포 앤드 애프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서양화가 정현숙 교수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비포 앤드 애프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뽀얀 백자 도자기에 나비가 날아들자 화폭에서 빛이 난다. 자개와 크리스털로 수를 놓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뻔한 도자기에 생기가 돈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을 서로 다르게 변주한 게 이채롭다. 전통 나전칠기 재료인 자개와 크리스털을 활용해 작업하는 정현숙 대진대 교수(60)의 도자기 그림들이다.

정 교수 개인전이 1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오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and After)’. 도자기와 나비 이미지 위에 가로 0.8㎝, 세로 0.2㎝ 크기의 자개 조각을 그물망처럼 교차시키고 그 사이로 크리스털을 붙인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그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적 기법을 바탕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질 시간의 흐름을 조선시대 백자에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을 졸업한 정 교수는 서구적 추상미술과 동양적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빛의 영원성을 화면에 붙잡아 두려 다양한 조형실험을 반복해 왔다. 한동안 금빛으로 감도는 원들이 선율처럼 변주되는 부조회화를 시도하던 그는 2007년부터 캔버스에 자개를 붙이며 변화를 줬다. 2009년부터는 크리스털을 추가해 옛 도자기, 첨성대, 금동보살 등을 되살려냈다. 서양 화법과 동양철학을 동시에 담아내서인지 그의 작품은 스위스 유로아트페어를 비롯해 일본 동북아미술전(NAAF), 미국 뉴욕 아트엑스포, 벨기에 라인아트페어, 미국 시카고아트페어 등에서 주목받았다.

순백의 곡선미가 돋보이는 도자기 작품들은 시간의 편린을 떠올리게 한다. 수천 개의 작은 자개가 이룬 사각의 공간에서 좁쌀만 한 크리스털들이 제각각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다. 빛을 화폭에 붙잡아두기 위해 도를 닦듯 작업했다는 정 교수는 “국내는 물론 외국 유수박물관에 소장된 기품 있는 물건들을 화면에 담기 위해 수년간 발품을 팔았다”며 “도자기의 긁히고 때묻은 흔적들은 과거와 미래의 흐름을 잡아내는 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각의 인물 사진을 촬영하듯 도자기를 스케치한 뒤 화면에 도공의 영혼까지 담아냈다.

최근에는 도자기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추가해 생동감을 주고 김홍도의 풍속화를 바탕에 깔아 기품을 되살려냈다. 황금빛을 기본으로 자개 조각을 접목한 그림들은 화려하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까지 준다.

1998년 어머니의 죽음에서 큰 영향을 받아 제작한 동그라미 형태의 단색화 작업도 내놓았다. 검은 화폭에 사각, 원형의 자개 조각을 끝없이 이어붙여 빛나는 원을 표현해 윤회사상을 녹여냈다. 정 교수는 “원은 우주의 무한한 순환의 표식으로, 영원을 이야기한다”며 “끝도 시작도 없는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