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단톡방서 정치 얘기 했다가 '줄퇴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매일 같은 색 점퍼 입고 다녔더니 "특정 정당 '알바' 아니냐" 오해도
돌아온 정치의 계절
'동네북' 여론조사 업체
총선 여론조사 발표 때마다 각정당 지지자 항의전화 '빗발'
직원인지 보좌관인지…출마 나선 회사 오너 때문에
정책 입안 때마다 임직원 동원…회사보다 국회 출근이 더 많네
돌아온 정치의 계절
'동네북' 여론조사 업체
총선 여론조사 발표 때마다 각정당 지지자 항의전화 '빗발'
직원인지 보좌관인지…출마 나선 회사 오너 때문에
정책 입안 때마다 임직원 동원…회사보다 국회 출근이 더 많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번 4·13 총선은 1년10개월여 만에 치르는 전국 단위 선거다. 공천 과정에서 여야가 드라마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갈등’을 겪어 직장 안에서도 선거에 대한 관심이 과거 다른 여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한편으로는 이럴 때 직장인들이 사내에서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와 관련해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간부들은 ‘꼰대’로 몰리기 일쑤고,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주니어들은 상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지지 정당 달라 곤란해요
부산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한 과장(35)은 회사 내에 친한 직원 10여명과 개설한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최근 퇴장했다. 그가 탈퇴한 이후 다른 직원들도 연이어 단체방에서 나왔다. 이 단체 카톡방은 사실상 사라졌다.
회사 내 또래 직원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꾸준히 이어져온 이 모임이 졸지에 공중분해된 이유는 정치 때문이다. 이 모임에는 정당에 소속된 직장 동료가 두 명 있었다. 이 둘의 소속 정당은 다르다. 한 명은 새누리당, 한 명은 국민의당이다.
평소에는 두 사람의 정치 성향이 문제 되지 않았다. 가끔 술자리에서 서로의 정당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문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발생했다. 두 친구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한 지역구에서 맞붙으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단체 카톡방은 점점 정치색이 짙은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유리한 뉴스를 카톡방에 올렸다. 서로에 대한 견제도 심했다. 가끔 예민한 이야기가 올라올 때면 카톡방이 두 사람의 토론방이 돼 버리곤 했다.
한 과장은 “두 사람이 소속 정당은 달라도 문제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선거 국면에 접어드니 확 멀어졌다”며 “동료들과 협의해 카톡방을 당분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중견 소재 회사는 이 같은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정치 관련 글을 올리는 행위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 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6)은 “정치와 관련된 글로 게시판에서 싸우고 나서 나중에 같이 일을 하려고 하면 괜히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 글을 아예 쓰지 못하도록 한 뒤에 업무 집중도가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운 여론조사업체 소속 김 대리
한 여론조사업체에 다니는 김 대리(29)는 요즘 사무실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 지지자로부터 “여론조사를 정확하게 한 게 맞느냐”는 항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리뿐 아니라 총선 여론조사 태스크포스(TF)에 소속된 동료 10여명도 같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며칠 전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는 특정 후보 지지자들이 회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회의실에서 김 대리의 선임인 TF팀장에게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전화를 돌린 거 아니냐” “상대 후보와 이렇게 오차범위 내로 적게 차이가 날 리 없다” “나중에 선거에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면 책임질 거냐”며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여론조사를 했다”는 팀장의 해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김 대리는 “총선이 민감한 이슈라 지지자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막무가내로 항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앞으로 여론조사 발표가 몇 번 더 남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의장님의 선거’, 괜찮을까?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송 차장(38)은 경기 분당갑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직전 회사에 다닐 때 있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송 차장은 한 식품 회사에 다녔다. 영업, 마케팅 등을 두루 거치며 회사 일에 적응해가던 무렵 회사의 오너 회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그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 회장은 자신이 국회에서 발표할 각종 정책을 입안할 때 회사 임직원을 동원했다. 회사 임직원은 보좌관들과 날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회사로 출근하는 날보다 여의도 국회로 가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내가 회사 직원인지 국회 보좌관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김 의장의 회사인 웹젠 직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 입법을 하면 회사 경영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야당으로 출마한 김 의장이 정권에 밉보여 규제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김 의장이 최근 연 기자회견을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는 게임업계 관계자도 있다. 이 관계자는 “기업과 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출마선언을 하는 모습이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며 “출마를 하기로 했으면,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빨간 점퍼 입었다가 일베로 몰린 사연
한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채 과장(34)은 지난달 초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기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다름 아닌 “너 진짜 일베하냐”라는 질문이었다.
일베는 극성 보수성향의 인터넷 사이트다. 경상도 출신이긴 하지만 특별한 정치색은 없었던 채 과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황당해했지만 이 동기는 “회사 내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의 옷차림과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오해가 증폭된 것이었다. 그가 즐겨 입는 옷은 빨간색 노스페이스 점퍼. 작년 겨울부터 계속 입던 옷인데 총선을 앞두고까지 입고 다니는 통에 “굳이 왜 봄에까지 두툼한 점퍼를 회사에 입고 오느냐. 특정 정당의 ‘알바’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동기의 얘기를 듣고는 곧바로 웃옷을 파란색 계열로 바꿔입기 시작했다. 말투도 최대한 사투리를 줄이는 쪽으로 조심하는 중이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추운데 어쩔 수 없이 얇은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네요. 정치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황당합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긴 한 것 같습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한편으로는 이럴 때 직장인들이 사내에서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와 관련해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간부들은 ‘꼰대’로 몰리기 일쑤고,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주니어들은 상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지지 정당 달라 곤란해요
부산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한 과장(35)은 회사 내에 친한 직원 10여명과 개설한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최근 퇴장했다. 그가 탈퇴한 이후 다른 직원들도 연이어 단체방에서 나왔다. 이 단체 카톡방은 사실상 사라졌다.
회사 내 또래 직원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꾸준히 이어져온 이 모임이 졸지에 공중분해된 이유는 정치 때문이다. 이 모임에는 정당에 소속된 직장 동료가 두 명 있었다. 이 둘의 소속 정당은 다르다. 한 명은 새누리당, 한 명은 국민의당이다.
평소에는 두 사람의 정치 성향이 문제 되지 않았다. 가끔 술자리에서 서로의 정당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문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발생했다. 두 친구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한 지역구에서 맞붙으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단체 카톡방은 점점 정치색이 짙은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유리한 뉴스를 카톡방에 올렸다. 서로에 대한 견제도 심했다. 가끔 예민한 이야기가 올라올 때면 카톡방이 두 사람의 토론방이 돼 버리곤 했다.
한 과장은 “두 사람이 소속 정당은 달라도 문제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선거 국면에 접어드니 확 멀어졌다”며 “동료들과 협의해 카톡방을 당분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중견 소재 회사는 이 같은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정치 관련 글을 올리는 행위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 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6)은 “정치와 관련된 글로 게시판에서 싸우고 나서 나중에 같이 일을 하려고 하면 괜히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 글을 아예 쓰지 못하도록 한 뒤에 업무 집중도가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운 여론조사업체 소속 김 대리
한 여론조사업체에 다니는 김 대리(29)는 요즘 사무실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 지지자로부터 “여론조사를 정확하게 한 게 맞느냐”는 항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리뿐 아니라 총선 여론조사 태스크포스(TF)에 소속된 동료 10여명도 같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며칠 전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는 특정 후보 지지자들이 회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회의실에서 김 대리의 선임인 TF팀장에게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전화를 돌린 거 아니냐” “상대 후보와 이렇게 오차범위 내로 적게 차이가 날 리 없다” “나중에 선거에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면 책임질 거냐”며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여론조사를 했다”는 팀장의 해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김 대리는 “총선이 민감한 이슈라 지지자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막무가내로 항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앞으로 여론조사 발표가 몇 번 더 남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의장님의 선거’, 괜찮을까?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송 차장(38)은 경기 분당갑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직전 회사에 다닐 때 있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송 차장은 한 식품 회사에 다녔다. 영업, 마케팅 등을 두루 거치며 회사 일에 적응해가던 무렵 회사의 오너 회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그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 회장은 자신이 국회에서 발표할 각종 정책을 입안할 때 회사 임직원을 동원했다. 회사 임직원은 보좌관들과 날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회사로 출근하는 날보다 여의도 국회로 가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내가 회사 직원인지 국회 보좌관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김 의장의 회사인 웹젠 직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 입법을 하면 회사 경영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야당으로 출마한 김 의장이 정권에 밉보여 규제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김 의장이 최근 연 기자회견을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는 게임업계 관계자도 있다. 이 관계자는 “기업과 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출마선언을 하는 모습이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며 “출마를 하기로 했으면,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빨간 점퍼 입었다가 일베로 몰린 사연
한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채 과장(34)은 지난달 초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기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다름 아닌 “너 진짜 일베하냐”라는 질문이었다.
일베는 극성 보수성향의 인터넷 사이트다. 경상도 출신이긴 하지만 특별한 정치색은 없었던 채 과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황당해했지만 이 동기는 “회사 내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의 옷차림과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오해가 증폭된 것이었다. 그가 즐겨 입는 옷은 빨간색 노스페이스 점퍼. 작년 겨울부터 계속 입던 옷인데 총선을 앞두고까지 입고 다니는 통에 “굳이 왜 봄에까지 두툼한 점퍼를 회사에 입고 오느냐. 특정 정당의 ‘알바’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동기의 얘기를 듣고는 곧바로 웃옷을 파란색 계열로 바꿔입기 시작했다. 말투도 최대한 사투리를 줄이는 쪽으로 조심하는 중이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추운데 어쩔 수 없이 얇은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네요. 정치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황당합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긴 한 것 같습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