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 등 한국인 약 200명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설립해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국제 공조를 통해 해당 한국인 명단을 확보한 뒤 역외탈세 혐의를 조사하기로 했다.

국내 인터넷 언론매체인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작업을 통해 이런 내용을 담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명단을 4일 공개했다. ICIJ는 중남미 파나마의 최대 로펌인 모섹폰세카의 1977~2015년 내부 기록을 확보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홍콩 출신 영화배우 청룽(成龍) 등 유명인이 연루된 1150만건의 조세피난처 자료를 폭로했고 뉴스타파는 ICIJ에 참여해 한국인 명단을 분석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노씨는 2012년 5월18일 버진아일랜드에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한 페이퍼컴퍼니 세 곳(원아시아인터내셔널, GCI아시아, 루제스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주주 겸 이사에 취임했다. 노씨는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에 “개인적인 사업 목적으로 1달러짜리 회사를 몇 개 설립했지만 회사를 이용해 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이번 자료에는 노씨 외에도 195명의 한국인이 조세피난처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타파는 조만간 이들 명단도 공개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이들의 역외탈세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제 공조를 통해 우선 명단부터 확보해 역외탈세와 연결됐는지 조사할 것”이라며 “다만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고 자금 거래 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혐의가 확인되면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세청은 2013년 뉴스타파가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원본 자료를 입수하고 이듬해까지 182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했다. 국세청은 이들 중 48명의 역외탈세 혐의를 찾아내 1324억원을 추징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