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일본처럼 ‘노후파산’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법원의 통계가 처음 나왔다. 노후파산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중산층이 노후에 불안정한 소득과 병치레로 빈곤 계층으로 전락하는 현상이다. 고령화 대국인 일본에선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올해 1~2월 법원이 파산선고를 내린 1727명을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이 전체의 24.8%인 42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25일 밝혔다. 파산선고를 받은 4명 중 1명꼴로 노인인 셈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계층인 50대(37.2%)보다 적은 수치지만 40대(28.2%)와 비슷하고 30대(8.9%)의 두 배가 넘는다.

A씨 부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74)는 젊은 시절 샐러리맨이었다. B씨(72)와 재혼해 자식 셋을 키우며 여느 가정처럼 평범하게 살았다. A씨는 1990년께 유통업체를 차렸다. B씨는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을 도왔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회사가 부도 났다.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A씨는 사업에 손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B씨는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까지 생겼다. 부부의 주 수입은 각각 노령연금 18만원, 동사무소 공공근로로 받는 푼돈이 전부다. 법원은 1월 A씨 부부에게 파산을 선고했다.

C씨(63)는 3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세 자녀를 홀로 키웠다. 지인 소개로 다단계 부동산업체를 소개받아 대출까지 받아가며 토지를 샀지만 손해만 봤다. 식당일을 하면서 대출금을 갚으려 했지만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유방암 수술까지 받으며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C씨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젊은 사람은 빚을 져도 근로 능력이 있어 벌어서 갚을 수 있지만 노인 계층은 그렇지 못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노후파산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평균수명은 늘고 있는데 과도한 자녀 사교육비 등으로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암이나 치매 등 노환을 앓기 시작하면 빚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