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치매노인이나 미성년자를 대신해 전문가가 상속 또는 가사소송 절차를 밟아주는 ‘가사상속절차 보조인 제도’(가칭)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가족 간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정부는 관계 기관과 민간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이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에 설치된 가사소송법 개정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법원이 지정한 보조인이 치매노인 미성년자 등의 가사·상속 관련 소송 제기나 법정 진술 등을 도와주는 내용이다. 보조인이 상속을 위한 공증 등 절차를 돕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대법원 파견 개정위원이 이 제도 신설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사·상속 분야는 이해관계자인 가족 한쪽이 당사자를 보호하면서 법적 절차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많아 중립적인 보조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치매노인의 재산을 둘러싼 자녀 간 상속 소송이 대표적 사례다. 자녀 넷을 둔 전모씨는 당초 재산을 자녀들이 똑같이 나눠 갖도록 상속을 설계했지만 치매 증상이 나타난 뒤 넷째 딸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태도를 바꿨다. 전씨는 넷째 딸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넷째가 어머니를 부추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사상속절차 보조인 제도가 도입되면 이해관계자가 아닌 중립적인 보조인이 당사자를 도와 절차를 대신하기 때문에 다툼의 여지가 줄어든다. 당사자 의견이 왜곡 없이 법적 절차에 반영되고 이해관계자도 더 수월하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최근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중립적인 보조인의 도움을 받았다면 처리가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위 내부에선 이 제도가 기존 제도와 기능 면에서 중복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제도 신설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직계혈족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법적 절차를 진행해주는 민법상 후견인 제도와 역할이 중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위 관계자 A씨는 “법무부와 민간 전문가가 견해를 밝히면 논의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개정위는 아동을 학대한 부모의 권리를 제한하고 벌칙을 강화하는 내용도 논의 중이다. 미성년 자녀가 직접 부모를 상대로 친권 상실이나 정지 등 가사소송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혼한 뒤 책임있는 부모가 양육비 지급을 30일 이상 미룰 때 해당 부모를 감치하는 방안도 안건으로 올라 있다. 현행법은 3개월간 내지 않아야 감치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25년 만의 가사소송법 전면 개정인 만큼 제도 전반에 걸쳐 방대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