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이두한 대항병원 대표원장(사진)은 서울의대 외과 동기 2명과 서울 방배동에 서울외과를 열었다. ‘외과수술 병원을 열겠다’는 말에 이 원장의 스승은 “혼자 해도 파리 날리는 외과를 셋이 해서 되겠느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남들과 다른 외과를 차리자고 마음을 모았다. 외과 의사 셋이 대장항문만 보는 병원을 세운 것. 대학병원에도 대장항문과 교수가 한 명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대장항문 질환조차 생소해 간판을 보고 웃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수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대학병원보다 친절한 서비스도 무기로 내세웠다. 주변에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던 항문 질환 환자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수술 일정이 2~3개월 밀릴 정도로 환자가 몰렸다. 밤 9~10시 수술도 다반사였다.

1999년 서울 사당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항병원으로 이름도 바꿨다. 2003년 건물을 2개로 늘렸다. 서울외과보다 7배 정도 규모가 커졌다. 3명이던 의사는 30명이 됐다. 외과 의사만 15명이다. 이 원장은 “친절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전문병원이기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늘 최신 치료를 하는 세계적 대장항문 병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항병원은 대장항문 전문병원이다. 국내에서 대장 내시경 점막하 절제(ESD)를 가장 많이 했다. 대장 ESD는 내시경 끝에 달린 칼로 대장에 생긴 용종을 포 뜨는 것처럼 도려내는 기술이다. 2006년 이 병원 의사 3명과 간호사 등이 일본에 가 기술을 배워 왔다. 지금까지 2000건 이상의 대장 ESD를 시행했다. 세계적으로도 최대 수준이다.

이전에는 작은 용종은 내시경으로 보고 갈고리 같은 철사로 잘라 없앴다. 철사로 잘라 없애기 힘든 것은 용종을 부풀려 떼어냈다. 용종이 너무 크면 배를 가르는 개복수술이 불가피했다. 용종을 부풀리면 터지거나 제대로 잘리지 않는 게 문제였다. 개복수술에 대한 환자의 부담도 컸다. 반면 ESD는 큰 용종도 내시경으로 떼어낼 수 있다. 이 원장은 “지금은 손바닥만 한 용종도 내시경만으로 떼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장항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병원을 키웠다. ESD 도입 전인 1990년대 초반 이 병원 의사들은 일본에서 대장 내시경 기술을 익히고 왔다. 하얀 바륨을 대장 속에 넣어 엑스레이로 질환 유무를 보는 조영술만 하던 시기다. 이 원장은 “대장항문 분야에서 대학병원보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컸다”며 “한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신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연구 의사에게는 수백만원씩 인센티브를 준다. 연구를 위해 진료 시간도 빼준다. 이 원장은 “국내 대장항문 의료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장항문 진료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가장 최신 기술에 근접한 병원, 대장항문 분야에서는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병원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문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우수병원입니다. 복지부로부터 난도 높은 질환에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인증받은 전국의 병원 111개가 전문병원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