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빛 기자 ] 국내 피자업계가 본사와 가맹점주가 상생협약을 맺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본사에 직접 이행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관련 법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스터피자·피자헛 본사는 가맹점주협의회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주재 하에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오히려 갈등은 더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스터피자와 피자헛 본사가 상생협약 이행을 소홀히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피자헛 본사와 가맹점주 협의회는 지난해 10월 이학영 더민주 의원 주재 하에 ▲매 분기별 정례적 회의 ▲광고비 집행내역 열람 허용 ▲가맹점주 30% 이상 반대시 전국 단위 프로모션 진행 불가 등을 담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본사가 이를 어기고 저가 마케팅을 강제로 실시하고 있다는 게 피자헛 가맹점협의회의 주장이다. 노용민 피자헛 가맹점협의회 회장은 "트리플박스 판매를 가맹점주 93%가 반대했지만 판매를 안 하는 가맹점에 공문 등을 통해 판매를 강제하고 있다"며 "본사의 지원은 45일간 판매가의 3%를 제공해주는 것 뿐이어서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미스터피자도 지난해 8월31일 김기식 더민주 의원 주재 하에 POS(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 계약시 상의하는 방안, 광고 활성화 관련 내용을 담아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가맹점협의회에 따르면 치즈가격이 MPK그룹 자회사를 통해 공급되면서 가격이 인상되고, POS 재계약도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상생협약 내용을 근거로 가맹점주 협의회가 문제제기에 나섰지만, 두 본사 모두 가맹점에 법적대응까지 시사하면서 갈등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종윤 미스터피자 가맹점협의회 회장은 "본사가 가맹점에 '창업주 명예훼손은 물론 브랜드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 경거망동에는 모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까지 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피자헛 본사도 "상생협약을 악용해 부당한 요구와 행동을 반복 및 조장하고 있는 일부 가맹점주에 대해선 경우에 따라 법적 조치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자율협약 불이행에 개입 '한계'…정치권 "관련 법안 마련돼야"

본사가 상생협약 이행을 둘러싸고 가맹점주협의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상생협약 이행에 강제성이 없어서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공정위가 상생협약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강조했다.

대한 외식프랜차이즈점주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상생협약이 처음 체결된 만큼 공정위가 나서지 않으면 정착되기가 엄청 힘든 상황"이라며 "협회 자체도 공정위나 지방 자치단체에 등록이 돼야 갈등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가맹사업법에 따라 협약 이행에 대한 평가와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간접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본사와 가맹점주는 사용자와 근로자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사업체 관계"라며 "조정원을 통해 갈등 중재엔 나서고 있고, 지난해 말 상생협약 평가기준을 만든 만큼 법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상생협약을 주재한 정치권에서조차 공정위가 직접 조치를 취하는 건 쉽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학영 의원실 관계자는 "상생협약 자체가 법적효력은 없지만, 정치권에서 주재한 만큼 본사는 이행 의무가 있다"며 "다만 상생협약이 확실한 대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이와 관련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학영 의원은 본사가 협약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가맹점에 30일의 파업권을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 현재 법안심사 소위 절차를 밟고 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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