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중국 주식시장 폭락을 기점으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U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외국인 하루 순매수 규모가 10개월여 만의 최대치(6509억원)를 기록하는 등 최근 3주간 2조7000억원에 달하는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 자금이 대거 몰려오는 ‘대밀물’의 전조란 분석마저 나온다.
외국인 자금, 한국 증시 'U턴 시그널'
◆달라진 외국인 자금 ‘분위기’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주(7~11일)에 886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5주 연속 주간 단위 ‘사자’ 행진을 이어갔다.

외국인 자금 흐름이 매도에서 매수로 반전된 지난달 16일 이후 총 2조6972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862.20에서 1971.41로 109.21포인트(5.86%) 상승했다. 외국인 매수세가 몰린 철강과 조선, 은행 등의 업종이 강세를 보인 덕이 컸다.

이 같은 외국인의 움직임을 두고 증권가에선 작년 6월부터 올 1월까지 총 18조7000억원에 달하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대썰물’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자금 유입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이 ‘팔 만큼 팔았을’ 뿐 아니라 중국 경기둔화와 같은 대외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신흥국 위험자산(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본격 유입될 기반을 갖췄다는 근거에서다. 실제 이달 들어 한국(14억6120만달러)과 대만(16억3740만달러), 태국(4억3330만달러), 인도(11억570만달러) 등 주요 신흥국으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사상 첫 제로 기준금리를 채택하고 양적 완화 확대를 선언한 지난 10일 전후로 유가증권시장의 외국인 자금 유입 규모가 하루 6000억원을 넘는 등 껑충 뛴 점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싣고 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순매수가 특정 업종에 편중되지 않고 고루 들어오는 전형적인 바스켓 매매(여러 종목을 묶어 한꺼번에 사고파는 것)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신흥국 통화가 강세(달러 약세)를 나타내는 것도 외국인 자금 추가유입 기대를 키우고 있다. LIG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2009년 이후 한국 홍콩 싱가포르 브라질 등 19개 신흥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비교한 ‘OITP 달러인덱스’가 강세로 전환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주식을 샀다. OITP 달러인덱스는 지난 1월 157.9에서 이달 156.2로 떨어졌다. 신흥국 통화가 강세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9년 이후 신흥국 통화가 강세로 바뀌는 아홉 번의 변곡점에서 외국인은 모두 한국 주식을 샀다”며 “올 3분기까지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 매수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기업실적이 ‘걸림돌’

외국인 자금의 밀물을 촉발할 만한 자체 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 주식시장의 약점으로 꼽힌다. 기업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게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다. 교보증권은 올 1분기 증시에 상장한 500대 기업의 순이익은 22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25조8500억원) 대비 11.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올 2월까지 14개월 연속 수출증가율이 감소하는 등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저유가 등의 위협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주식의 투자 매력이 높아지려면 경기와 기업실적 지표가 빠르게 개선돼야 한다”며 “지금까진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관의 매도세도 시장의 불안요인이다. 외국인 자금유입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수가 꾸준하다고는 하지만 코스피지수 1950선 이상에선 차익실현을 노린 기관의 매도압력이 커진다”며 “기관 매도세가 코스피 추가 상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