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4·13 총선을 앞두고 제시한 복지 공약의 60%가 재정이 얼마나 들지 추계조차 해보지 않은 ‘부실 공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심을 잡기 위해 무상 복지 등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을 급하게 내놓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앞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실현 가능성조차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할 공약도 부실해 성장동력을 갉아먹으면서 재정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총선 D-30 쏟아지는 선심 공약] 여야 복지공약 42개 중 26개, 돈 얼마나 들지 계산조차 안했다
건강보험 재정만 믿는다는 與

한국경제신문이 13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총선 복지 공약을 분석한 결과 42개 중 26개 공약에 비용 추계가 없었다. 비용 추계 결과를 함께 내놓은 공약은 16개뿐이었다. 복지 공약의 62%는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도 따져보지 않은 채 발표한 것이었다.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한 공약은 9개로 더 적었다. 비용 추계치와 재원 마련 방안을 모두 내놓은 공약은 3개뿐이었다.

새누리당은 19개 공약 중 13개에 대해서만 비용 추계치를 제시했다. 간병비 인하, 만 65세 이상 의료비 정액제 기준 인상 등 의료 복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에 수반되는 비용 추계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선 지난 1월 말 현재 16조8721억원의 흑자를 내고 있는 건강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령화 속도가 빨라 건보 재정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 혜택이 많아지면 의료 서비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당초 예상한 수준을 뛰어넘는 비용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은 초등학교 돌봄교실 확대 등 사교육비 경감 대책도 재정 추계 없이 발표했다. 이 밖에 △시니어 행복센터 건립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지원 △청년·독거노인 임대주택 제공 등은 비용 추계를 내놨지만 별도의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 꼭 투표하세요 >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13일 경기 수원시청 사거리에서 4·13 총선을 알리는 깃발을 달고 있다. 기호일보 제공
< 꼭 투표하세요 >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13일 경기 수원시청 사거리에서 4·13 총선을 알리는 깃발을 달고 있다. 기호일보 제공
세금 올리면 된다는 野

더민주는 10개 공약 중 2개만 비용 추계를 제시했다. 고교 무상교육, 공공기관 및 학교 급식 확대, 100% 국가 책임 보육 등 굵직한 공약을 비용 추계 없이 내놨다.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 한 가지 공약을 실현하는 데만 연간 3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더민주는 기초연금 인상 공약에 대해선 재정 추계치를 내놨다. 만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에 월 10만~20만원씩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으로 올리려면 2018년 6조4000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은 세출 구조조정과 법인세·소득세 인상 등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의당은 13개 공약을 제시하면서 1개만 비용 추계 결과를 포함시켰다. 육아휴직 대체 근로자 인건비 정부 지원, 청년 구직수당 도입, 노인장기요양보험 확대 등에 대해 비용 추계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존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개선하지 않은 채 새로운 복지정책을 도입하는 데 급급하다”고 말했다.

투자·소비 살릴 공약 빈약

복지 공약에 비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를 자극해 재정 확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약은 빈약하다. 그나마 나온 공약 대부분이 기존 정책의 ‘재탕’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누리당의 U턴 기업 경제특구 설치, 관광산업 활성화, 창조경제 활성화 등은 대부분 시행 중인 정책을 보완하거나 정부가 시행 계획을 밝힌 정책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야당의 정책은 ‘성장을 가장한 기업 규제 공약’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더민주가 내세운 비정규직 사용 부담금제, 청년고용할당제 등이 대표적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기업 투자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공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