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법당국 우롱하는 외국계 증권사
“외국계 증권사 사건이요? 사고를 친 회사가 워낙 많아서 어떤 사건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스위스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불법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한 법원 판결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3일자에 ‘무늬만 해외 공모 CB 발행해 236억 챙긴 외국계 증권사 직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CS가 2005~2006년 부실 상장사들로부터 CB를 단독으로 인수했으면서도 다른 여러 해외 투자자가 공모 방식으로 경쟁해 인수한 것처럼 꾸며 상장사의 주가를 끌어올린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를 다룬 보도였다. CS 홍콩지점은 200억원대의 불법 차익을 챙겼지만 사건을 벌인 외국인 직원들은 수백만원의 벌금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문제는 사고를 친 외국계 증권사가 CS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이치증권 전·현직 직원들은 2010년 11월 대규모 시세조종 사건인 ‘11·11 옵션쇼크’와 관련해 지난 1월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기소된 4명 가운데 한국인 직원 1명만 재판에 출석했을 뿐 나머지 외국인 직원 3명은 행방 자체가 묘연하다.

검찰이 2008~2009년 주가연계증권(ELS)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2011년 캐나다왕립은행(RBC)과 BNP파리바의 전직 외국인 직원들을 기소했지만 이들이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국내 증권사 직원은 지난해 법정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2012년 적법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6000억원대의 구조화 채권을 판매한 골드만삭스 전·현직 대표들도 지난해 10월 벌금 2000만~3000만원에 약식 기소되는 데 그쳤다. 골드만삭스 홍콩지점에서 168억1600만원의 불법 수익을 환수해 국고로 귀속시킨 정도가 검찰이 제대로 행사한 사법권이었다.

한국 사법당국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국 증시를 ‘놀이터’로 삼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사법 체계가 외국계 증권사와 국내 증권사에 다르게 작동하는 현 상황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