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1983년 방한 당시 자신이 직접 미국으로 데려가 심장병 수술을 받게 했던 한국 어린이 두 명과 재회한 모습. 연합뉴스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1983년 방한 당시 자신이 직접 미국으로 데려가 심장병 수술을 받게 했던 한국 어린이 두 명과 재회한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을 지낸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레이건 대통령 기념도서관의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이날 “낸시 여사가 오늘 오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자택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1921년 뉴욕 출생인 낸시 여사는 1940~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배우로 활약하다가 1952년 당시 유명 배우인 남편 레이건과 결혼했다. 1956년 배우 활동을 접고 양육에 전념하던 그는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온화한 이미지에 조용히 내조하는 스타일의 퍼스트레이디로 비쳤지만 막후에서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로서 적극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에 있으면서 마약 퇴치 캠페인 ‘아니라고 말하라(Just say no)’ 운동을 주도했으며, 백악관을 떠나서는 알츠하이머 퇴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외신은 “낸시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꼽힌다”고 평가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후 10년간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하다가 2004년 6월 폐렴 합병증으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83년 11월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방한했을 당시 국제자선기구 기프트오브라이프 인터내셔널(Gift of Life International·GOLI) 주선으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한국인 어린이 두 명을 직접 미국으로 데려가 수술시켰다. 당시 네 살이던 이길우와 일곱 살이던 안희숙 어린이는 수술 후 건강을 되찾고,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그들은 1988년 낸시 여사와 다시 만났다. 입양 후 브렛 핼버슨으로 개명한 이씨는 GOLI에서 글로벌 대사로 활동하며 심장병 어린이 수술지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낸시 여사의 타계 소식에 일제히 애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낸시 여사는 온화함과 관대함의 자랑스러운 본보기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애도성명을 통해 “낸시는 진정으로 위대한 대 통령의 부인으로서 놀라운 여성이었고,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공동 성명을 내고 “낸시는 자애로운 퍼스트레이디면서 자랑스러운 어머니였으며 남편인 ‘로니’(레이건 전 대통령의 애칭)에게는 헌신적인 부인이었다”고 밝혔다.

낸시 여사의 유해는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에 있는 레이건 전 대통령 묘역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