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관리비 연 43억 내는데…상가선 녹물 흐르고 벽 갈라져"
26일 찾은 서울 금천구 시흥유통상가. 건물 모서리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지하 통로에 생긴 0.5㎜가량의 틈 사이로는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당수 여자화장실은 문 잠금장치가 떨어진 채 방치된 상태였다. 이곳에 입점해 영업하는 한 상인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점자들이 내는 관리비가 연 43억원이나 되는데 다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아파트 관리비 문제가 쟁점이 돼 투명한 관리를 위한 법안까지 국회에 제출된 가운데 대규모 집합상가의 관리비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3000~4000개 점포의 상인들이 내는 관리비는 한 해 수십억원에 이르지만 이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감시할 주체는 따로 없다. 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상인들과 관리업체 사이에 고소·고발 등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제멋대로 관리비 책정에 관리비 유용

[경찰팀 리포트] "관리비 연 43억 내는데…상가선 녹물 흐르고 벽 갈라져"
1987년 지어진 시흥유통상가의 전체 점포 수는 3750개로 상인 2200여명이 입주해 있다. 상가입주 초기 시점부터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가 관리를 맡고 있다. 1994년부터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의 대표를 맡은 이들 중 1년 이상 근속한 3명은 모두 비리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일한 김모 전 대표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1년1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대표 공로금 및 자신에게 우호적인 소유주 건물 무상수리비용 등으로 수억원의 관리비를 무단 사용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08년 “이사보수, 상가관리 등에 관한 횡령과 배임으로 회사에 적지 않은 손해를 입혔다”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추가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 과정에서도 계속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결했다. 2014년까지 대표를 맡은 권모씨도 법원의 명령과 다르게 주주총회를 진행해 벌금 300만원을 부과받았다. 이런 문제로 현재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 대표이사 직에는 법원이 임명한 직무대행자가 1년이 넘도록 근무하고 있다.

다른 대형 집합상가도 비슷하다. 4150여개 점포가 있는 서울 구로본동 구로중앙유통에서는 지난 20여년간 연 30억원 규모의 건물 관리용역이 수의계약으로 특정 업체에만 돌아갔다. 박철수 구로중앙유통 서울중앙기계부품상협동조합 부장은 “구로중앙유통의 관리비는 불과 50m 떨어진 구로공구상가의 두 배”라며 “많은 입주자가 항의하고 단지를 떠났다”고 털어놨다.

3900여개 점포 규모인 경기 안양의 안양국제유통에서도 관리 문제를 둘러싸고 당사자들 간 고발사건이 빈번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 등 감독 근거도 없어

대형 집합상가에서 각종 비리가 횡행하는 주된 이유로는 상가를 임차해 쓰는 상인들이 상가 관리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 꼽힌다.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의 주주는 1400여명으로 모두 시흥유통상가 내 점포 소유주다. 하지만 이들 중 직접 영업하는 이는 200여명에 불과하다. 현장 상인들은 “상가주들은 월세만 잘 받으면 되는 입장이라 상가 관리에는 관심이 없다”며 “관리회사 사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도 감독 권한이 없다. 상가건물에 적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에 관리업무에 대한 행정감독 규정이 없어서다. 아파트 등에 적용하는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지자체장이 관리업체를 자료조사 및 검사할 수 있는 감독 규정이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부터 ‘공동주택 관리비리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관련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의 신청에 따라 이 회사에 관리자 지위를 인정해준 서울 금천구청 관계자도 “관리 비리나 분쟁은 상가 내부 문제”라며 “구청이 법적으로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상가 관리에 불만이 있는 시흥유통상가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시흥유통진흥사업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최우철 조합장은 “상가건물 관리는 법에 아무 규정이 없으니 비리가 어느 정도인지, 관리비가 적정한지, 안전문제가 있는지 등을 알 수 없다”며 “유통산업발전법에 상가 관리업무에 대한 행정감독 근거를 명시해달라”고 촉구했다.

시흥유통관리주식회사 관계자는 “기본적인 유지·보수는 다 하고 있는데 일부 상인이 상점 소유자가 해줘야 할 수리까지 관리회사에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장실 등 공용공간의 부실한 관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시흥유통상가에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는 외부주주 중 한 사람은 “그동안 관리회사가 시끄러운 것은 알았지만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고자 하는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위임장을 써주기만 했던 것이 이 정도까지 문제가 될지 몰랐다”며 “외부 소유자는 관리비 비리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 정부기관의 감독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많은 상가에서 관리용역회사를 임의로 선정하는 일이 빈번하고 관리회사의 횡포에도 상인들이 대항할 방법이 없어 관리를 둘러싼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