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포기하고 알바뛰는 청년들 "고향 가서 핀잔 듣느니 생활비 벌래요"
“설에 고향 집에 내려가도 취직은 언제하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등 어른들 등쌀에 스트레스만 받아요. 차라리 여기서 5일 정도 일하고 40만원 버는 게 낫죠.” 설 연휴인 지난 8일 서울 삼성동의 한 백화점 지하 1층 명절 선물세트 판매장. 졸업을 앞둔 여대생 최모씨(27)가 “한우 선물세트 있습니다”라며 목청을 높였다.

최씨는 이번 설 연휴 기간 5일을 백화점 선물세트 판매원으로 일한다. 평소 일당은 5만~6만원이지만 설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알바)는 돈을 좀 더 얹어 준다. 최씨는 “돈을 더 받는 것도 좋지만 설 단기 알바는 2~3일 내로 알바비를 주니까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겐 더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설 연휴도 마다치 않고 알바에 뛰어들고 있다. 알바몬과 잡코리아가 설 연휴 전 대학생 147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7.5%가 ‘귀향 대신 아르바이트를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주된 이유로 ‘생활비 한 푼이 아쉽다(27.5%)’, ‘불편한 자리나 친척을 피할 수 있기 때문(22.8%)’ 등을 꼽았다. ‘다른 때보다 설에 일하면 급여가 더 높기 때문(21.1%)’이라는 대답도 있었다.

서울 논현동 한 편의점에서 설 연휴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차미혜 씨(25)는 “친척 집에 가서 어른들과 얘기하면 답답하기만 하다”며 “내년에도 가능하면 고향에 안 내려가고 서울에 남아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호프집에서 설연휴 단기 알바를 하는 휴학생 최혁순 씨(24)는 “세뱃돈 받을 나이도 지난 마당에 3월 복학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버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나중에 좋은 소식이 생기면 그때 가족들을 보러 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설 단기 알바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많자 구직 사이트들은 별도 코너를 마련했다. 설 단기 알바를 구하기 위해 고용주들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매장 매니저는 “설 연휴 때 근무하는 알바생에겐 외식상품권을 주기로 했다”며 “다른 고액 단기 알바를 하려는 알바생들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봉천동의 한 편의점 점주는 “평소와 같은 시급을 제시했더니 결국 연휴 기간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의 한 카페 매니저는 “아예 알바를 뽑을 때부터 설 연휴 근무 가능 여부를 채용 조건으로 내건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