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혜리
"가족과 첫 해외여행…올 설은 더 특별해요"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본명 이혜리·22)의 실제 모습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덕선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지난 2일 서울 성수동 기획사에서 만난 혜리는 구부정한 자세로 터덜터덜 걸어 다니는 덕선과 달리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가왔다. 혜리는 응팔에서 언니 보라에게 눌리고 동생 노을에게 치이는, 설움 많은 둘째 딸이지만 구김살 없고 정 많은 소녀 덕선을 야무지게 소화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덕선이와 혜리의 ‘싱크로율’이요? 감독님은 저보고 ‘덕선이 그 자체’라고 하시는데, 제 생각엔 50%쯤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정 많은 덕선이를 만나 정말 고마웠어요. 전 덕선이보다 보라랑 더 닮은 것 같은데요. 제 동생도 방송을 보고는 ‘언니 완전 성보라야’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덕선 역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이 좋지 않더라고요. ‘내 연기가 그 정도밖에 안 됐나’란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전작인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를 찍고 나서 많이 속상했어요. 당시 오전에는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을 촬영하고, 오후에는 ‘하이드 지킬, 나’를 찍으러 다니면서 역할에 집중하지 못했거든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응답하라 1988’은 철저하게 준비했다. “첫 회에 벽을 깨지 못하면 여론을 잡기가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감독님과 1 대 1 리딩을 하면서 초반 1, 2회 분량만 두 달 가까이 연습했습니다. 보라 언니 생일파티 장면은 아직도 대사를 줄줄 욀 정도예요. 눈물이 나고 안 나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둘째의 설움을 가득 담은 장면인데,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됐어요.”
망가질 때도 철저하게 망가졌다. 이상은의 ‘담다디’에 맞춰 옷걸이 춤을 추는가 하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뛰어다니는 등 걸그룹 출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행여나 친구 택이가 불편할까봐 중국 호텔 직원에게 “화장실, 고장! 밤새 물 졸졸졸~ 한 숨도 못 잤어. 오케이?”라고 항의하는 장면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은 혜리의 작품이다. “대본을 보고 몸짓을 제가 만들어 갔어요. ‘안 웃기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죠.”
1994년생인 혜리는 1988년 쌍문동 골목길이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경기 광주에서 덕선이네처럼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기억이 뚜렷하진 않은데요. 옆집 가서 반찬 얻어오고, 밥 얻어먹는 게 자연스러운 시골 같은 데서 살았어요. 그래서인지 응팔이 아주 옛날 얘기 같진 않았어요.”
“아빠,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아파트 사 줄게”라며 웃는 덕선이의 드라마 속 모습도 혜리와 닮았다. 2011년 걸스데이로 데뷔한 뒤 번 돈을 모아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번듯한 아파트 전셋집을 마련했다. 아버지 차도 바꿔드렸다. “‘효도해야지’란 생각으로 했다기보다, 없는 것 해드린 것뿐이에요. 저는 사실 돈 쓸데가 거의 없거든요. 가방이나 옷 사는 데도 큰 관심이 없고, 특별히 무엇을 모으는 취미도 없고요. ”
쉴 때는 다른 가족처럼 동생과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는 평범한 여대생이다. 늘 치고받는 보라와 덕선이와는 달리 자매간 사이는 좋다고 했다. “보통 자매들은 함께 있으면 싸우기 마련인데, 제 동생은 제가 집에 간다고 하면 안 나가고 저를 기다려요. 어릴 때부터 붙어 지내서 그런지 애틋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대답은 소박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집에 가요. 평소에는 거의 대부분 배달 음식을 먹는데, 엄마가 해주는 밥이랑 찌개를 먹고 출근할 때, 그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가족인가봐요.”
‘혜리 투어’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차분하게 얘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온 가족이 다같이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오랜 기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어서 벌써부터 기대가 커요. 한국경제신문 독자분들도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다치지 말고, 즐거운 명절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