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최고 번화가인 긴자거리. 긴자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바로 있는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 8층 시내면세점은 28일 오전 시간임에도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중국인에게 인기 있는 SKⅡ, 시세이도 등 화장품 매장은 관광객이 줄지어서 제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 준비한 제품이 이미 동난 듯 손수레에 화장품 박스를 실어 나르는 직원의 모습도 보였다. 중국 장저우시에서 여행을 왔다는 저우상쿤 씨는 “일본 화장품이 최고”라며 “지난번에는 너무 적게 사서 이번에는 중고 트렁크도 하나 구입해 물건을 담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28일 오전 도쿄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 내 면세 화장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전날 도쿄에 첫 시내면세점을 개장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28일 오전 도쿄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 내 면세 화장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전날 도쿄에 첫 시내면세점을 개장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요우커 몰리는 일본과 태국

화장품 매장을 돌아 반계단 정도 올라간 곳에는 구찌, 루이비통, 티파니 등 수십개 명품 매장이 줄지어 있었다. 면세점 안내 직원은 중국어로 말을 건네며 매장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 영업사원 160명 중 70%가 중국어나 한국어, 영어 등이 가능하다고 했다. 미쓰코시백화점 지주회사인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 관계자는 “개장 첫해인 올해 150억엔(약 15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시내면세점에서 관광객들이 더욱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는 그동안 시내면세점이 오키나와에만 있었다.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는 이번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에 ‘재팬 듀티프리 긴자’를 연 것을 비롯해 오는 4월 후쿠오카점에도 시내면세점을 열 계획이다. 한국의 롯데면세점도 3월 말 긴자에 2개층, 매장규모 4300㎡의 대형 시내면세점을 개장한 뒤, 내년 2월에는 오사카에도 면세점을 열 예정이다. 2020년 이후 3개 면세점을 추가로 개장할 계획도 있다. 이성철 롯데면세점재팬 영업팀장은 “유통마진은 한국에 비해 작지만 중국인 관광객(요우커)들의 바쿠가이(爆買い·싹쓸이 쇼핑)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국도 2014년 9월 하이난에 세계 최대 면세점을 열었다. 기존에 있던 연면적 1만㎡의 면세점에 50억위안(약 8250억원)을 추가 투자해 규모를 7만㎡로 늘렸다. 국내 최대인 롯데면세점 본점(1만1200㎡)의 6배가 넘는다. 요우커가 한국이나 일본 대신 중국에서 쇼핑하도록 해 면세점산업을 통해 내수를 살리자는 취지다.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태국도 면세점 전쟁에 뛰어들었다. 방콕에 있는 킹파워 면세점을 앞세워 요우커를 끌어들이고 있다. 2014년에만 태국 면세점 시장이 한국의 두 배 이상인 47.3% 성장했다.

◆각종 규제로 겉도는 한국

주변국들이 정부 지원 아래 면세점산업을 강화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면세점업계는 여러 규제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년마다 면세점 특허권을 재심사하는 ‘5년 시한부’ 정책과 대기업 계열 면세점 점포 수를 국내 전체 면세점 점포 수의 60% 이내로 묶는 관세법이 대표적이다.

각종 제약으로 새로 사업을 하게 된 서울 시내면세점들은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권을 획득한 신라아이파크면세점과 갤러리아면세점63은 지난달 24일과 28일에 각각 서울 용산과 여의도에 면세점을 개장했지만 실적이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랜드 오픈’에 앞서 일부 매장만으로 영업을 시작한 탓에 하루 방문객이 2000명 수준이다. 당초 회사 측이 기대한 초기 단체방문객 수는 3000명 이상이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개점 시기를 무조건 앞당기라는 정부 정책이 이런 현상을 불러왔다는 게 면세점업계의 시각이다.

이런 엇박자가 계속되면 세계 면세점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변국들은 면세점을 수출산업으로 보고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한국만 면세점산업을 각종 규제로 묶으려 한다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다른 나라에 다 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정인설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