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대우증권은 2년 전부터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비행기를 팔고 있다. 2014년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의 에어버스(A330-300) 항공기에 투자하는 상품을 개발해 국내 기관들에 매각했다. 비행기 주인은 한국 기관들이지만 핀에어가 그대로 쓰면서 임차료를 내는 구조다. 지난해에는 국내 기관 들과 두바이 에미레이트항공의 항공기에 공동 투자했다. NH투자증권은 얼마 전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TV 중계권을 유동화해 국내 기관에 파는 방안을 추진했다. 거래 성사 직전 무산됐지만 지금도 비슷한 상품을 찾고 있다.
[글로벌 투자전쟁 격전의 현장을 가다] 발전소·항공기·EPL 입장권…국내 증권사도 해외자산 '사냥' 나선다
자본 수출 첨병 나서는 증권사

국내 증권사들에 ‘해외 상품 발굴’은 지상 과제가 됐다. 덩치(운용자산)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내 연기금, 보험사 등이 글로벌 투자를 늘리다 보니 국내 증권사들도 기관에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훑을 수밖에 없게 됐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증권사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주식, 채권 같은 국내 상품을 팔아 수수료를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국내 투자자들에게 해외 상품을 찾아주는 일이 주 수익모델이 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국내 기관에 판매한 해외 자산 규모는 작년 11월 말 현재 34조4996억원에 달했다. 2011년 10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2년 14조490억원 △2013년 20조4489억원 △2014년 28조6346억원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발전소·항공기가 단골 투자 대상

증권사들이 해외에서 찾는 물건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지 팔겠다”는 기세다. 하나금융투자는 작년 8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화력발전소를 보유한 케이스니스 브룩헤븐의 매출채권을 구조화해 농협중앙회, 롯데손해보험 등에 매각했다. 6100만달러 규모로 7년 만기에 수익률 5%짜리 상품이었다.

HMC투자증권은 지난달 투자자를 모아 싱가포르항공이 운항 중인 에어버스 항공기를 1150억원에 사들였다. 중소형 증권사인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은 지난해 국내 연기금들과 인터넷 유통업체 아마존의 미국 델라웨어주 물류센터(사진)에 공동 투자했다.

증권사들은 조직도 국내 기관 영업을 확대하는 쪽으로 개편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국제부를 팀으로 축소했다. 대신 국내 기관 영업 인력을 크게 늘렸다. 해외 고객보다 국내 고객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장승철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한국은 이제 자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었다”며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상품을 찾아내는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의 타이틀리스트 인수건 나와야”

하지만 국내 증권사, 운용사들의 글로벌 상품조달 능력은 글로벌 대형 경쟁사에 비해 아직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등이 여전히 비싼 수수료를 주고 해외 대형사에 돈을 맡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큰손’이 해외 위탁 확대에만 치중하지 말고 국내 투자은행(IB)과 운용사들의 글로벌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중국 연기금들은 해외 운용사에 자금을 위탁할 때 자국 운용사와 공동 펀드를 구성하는 곳에 가산점을 주는 등 막대한 바잉파워(구매력)를 자국 금융산업 발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국민연금이 미래에셋자산운용, 휠라코리아 등과 글로벌 골프공 생산 1위 업체 타이틀리스트를 12억25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은 국내 연기금과 운용사, 기업이 손잡고 해외 투자에 나선 대표적인 성공사례”라며 “제2의 타이틀리스트 인수 건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석정 CVC캐피털파트너스한국 회장은 “자금을 보유한 대형 운용사와 연기금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전 세계 투자 상품과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몰려들 것”이라며 “막대한 기관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와 운용의 글로벌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진 / 뉴욕=유창재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