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두 번째 목요일 오전 9시.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15층이 기자들로 가득 찬다.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이다. 엄숙한 정적을 깨는 것은 카메라 플래시뿐이다. 금통위원 7명의 표정과 서류 두께, 의장인 이주열 한은 총재의 넥타이 색상까지 시장에 긴급 타전된다. 이들은 한두 시간 뒤 기준금리 숫자를 내놓을 것이다. 연 0.25%포인트만 움직여도 대한민국 돈의 질서가 바뀐다.

금통위원 7명 가운데 4명의 임기가 오는 4월20일 만료된다. 이 자리에 앉겠다는 사람들이 벌써 물밑 경쟁 중이다. 누군가에겐 기회지만, 국민경제엔 위기다. 과반수 금통위원 교체로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금통위원 7명 중 4명 석달 뒤 한꺼번에 교체…벌써부터 물밑경쟁
◆벌써부터 하마평 무성

석 달 뒤 임기가 끝나는 금통위원은 하성근, 문우식, 정해방, 정순원 위원이다. 2012년 4월21일 동시에 임기를 시작했다. 경제학 교수(하성근, 문우식)부터 전직 경제관료(정해방), 기업 경영인(정순원)까지 다양한 경력자들이다. 한 금통위원은 “초반엔 걱정도 있었지만 네 명이 함께 연구하면서 적응해나갔다”며 “이제 자리를 좀 잡은 것 같은데 나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 네 명의 위원은 2014년 5월 금통위에 입성한 함준호 위원, 당연직 금통위원인 이주열 총재, 장병화 부총재와 함께 굵직한 금리 결정을 이끌었다. 작년과 재작년 네 차례 금리 인하로 사상 최저 금리(연 1.5%) 시대를 연 것도 이들이다. 막중한 임무를 누가 물려받을 것인가는 일찌감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 고위 경제관료는 “희망자를 줄 세우면 한은 건물을 세 번 돌고도 남을 것”이라며 “하마평에 실명이 오르는 사람도 서너 명 있다”고 전했다. 금융 실무에 밝은 현직 관료 A씨, 여러 경제학회 회장을 맡아온 교수 B씨 등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7인의 현인’

금통위원은 선망의 자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통위원은 전원 상근직이 됐다. 이전엔 한은 총재 등 당연직을 빼고는 비상근이었다. 연봉은 3억원 가까이 되고 집무실과 전용차도 제공된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통화정책만 고민하는 대가다. ‘7인의 현인’이라는 우아한 별칭처럼 명예도 따라온다.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4년 임기를 보장받는 것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은 각계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추천 제도는 대체로 유명무실했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사실상 청와대가 임명하는 자리란 말이 많다”며 “정치권 인맥이 있거나 정부에 자문을 제공한 경험이 있는 교수 등이 많이 지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물밑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4년마다 ‘물갈이’ 불가피

문제는 금통위 과반수가 한꺼번에 바뀌는 데 따른 ‘불확실성’이다.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통화정책이 급류에 휘말릴 올해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적절한 인원의 임기를 교차해 적용한다. 한은 또한 1998년 일부 위원의 임기를 한시적으로 2년으로 줄여 이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2010년 4월 박봉흠 전 위원이 퇴임한 뒤 2년간 공석이 지속되면서 2012년 4명이 한꺼번에 임명됐다.

4년 뒤인 2020년에도 똑같이 4명의 위원이 교체된다. 여기에 임기 3년의 장병화 부총재 후임자 임기 만료까지 맞물린다. 한국은행법 개정 등 법적인 해결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은 관계자는 “법 개정의 열쇠를 쥔 국회가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