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3년6개월을 더 살았다. 화학 치료는 하지 않았다. 수술도 하지 않았다. 소독 냄새 나는 병원 침대 대신 포근한 집 마당과 텃밭에서 ‘햇빛 샤워’를 했다. 그런 일상의 평온이 최고의 치료법이었을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웃음꽃을 피우다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는 어땠는가. 그는 죽기 6개월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며 ‘나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지는 나한테 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남은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고, 더 많이 쓰고, 힘이 닿는다면 여행도 하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이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초연함은 그가 인생을 한발 떨어져 조망했기에 가능했다. 사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삶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세계적 사상가이자 의사인 아툴 가완디도 이 점에 주목한다. 베스트셀러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그는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집착하기보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자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못지 않게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많이 거론되는 게 ‘어시스티드 리빙’이나 ‘완화치료’ 등이다. 예를 들어 기존 요양원과 같은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신개념 주거시설을 활용하는 것이다. 동식물을 들이거나 인근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의 생명력을 접목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호스피스 상담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맹목적인 연명 치료를 환자 뜻에 따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환자의 ‘자기 결정’에 따라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 등을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열린 것이다. 미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 대만 등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법이다. 일부 말기 암 환자에게만 적용되던 호스피스·완화의료도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변 등으로 확대된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품격 있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존엄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닌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