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한경닷컴 뉴스국장>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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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지난해 8월 취임한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74·사진)의 직전 보직은 규제개혁위원장이었다. 통념상 규제개혁과 동반성장은 결이 다르다. 전향에 가까운 ‘변신’으로 볼 수도 있다. 15일 출범 5주년을 맞은 동반위를 찾아 그에게 경제학자로서의 ‘입장’을 물었다.

안 위원장은 “상품을 거래할 때 정상가격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으로 경제주체들이 페어플레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며 “이런 관점에서 규제개혁과 동반성장은 맥이 닿는다. 이질적 개념으로만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막상 동반위에서 일해 보니 외부에서 바라볼 때와는 차이가 있어요. ‘시장경제에는 진입의 자유가 있고 승자(winner)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이론과 직접 부딪치는 현실은 다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가정하는 순수시장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기본으로 하되 신사협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 필요해요.”

동반성장의 무게 중심이 분배 쪽으로 쏠렸다는 시각에도 반대 의견을 폈다. 그는 “성장 없는 분배는 파이 나누기에 매몰돼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 성장을 추구하되 기업가정신이나 근로·저축 의욕을 저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의 ‘포용적 성장’을 하자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성장제일주의에서 분배 쪽으로 약간 이동한 ‘성장우선’에 동반위의 좌표를 설정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안 위원장은 “동반성장은 이념적 패러다임이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장, 산업생태계의 건전성 및 경쟁력 강화 차원의 엄연한 경제성장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반성장을 시장 결함과 대기업 주도 압축성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 방향은 ‘기술기반형 동반성장’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역할 분담에 초점을 맞췄다. 대기업이 신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을 맡는 형태다. ‘판’이 깔린 뒤는 중소기업들의 몫이다. 세부 기술혁신과 한류 콘텐츠 활용 등에 나선다. 한마디로 제 살 깎아먹는 경쟁을 지양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통할 기술경쟁에 나서라는 주문이다.

“골목상권에 들어와 손쉽게 돈 벌 생각 말고 세계와 치열하게 기술로 경쟁할 때 아닌가요. 동반위원장 취임 때부터 화두를 던졌습니다. 대기업 혼자서 할 수는 없어요. 부품·소재 분야 중소기업이 탄탄한 기술력을 갖춰야 경쟁할 수 있죠. 그래서 협력경영이 중요합니다.”

안 위원장은 기업경영 패러다임 변화를 동반성장이 필요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최고경영자(CEO)를 넘어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란 경영자상이 나왔다”고 전한 뒤 “이젠 단기적 수익 창출이 아닌 영속(永續)적 기업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대기업들도 달라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실시한 국내 200대 기업 조사에서 115개 응답 업체 중 84곳(73%)이 동반성장 전담조직을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동반위가 ‘의미있는 변화’로 보는 대목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동반위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동반위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동반성장지수 발표 등의 초기 역할에 비해 △성과공유제 △상생결제시스템 도입 △동반성장 밸리 조성 △민관공동투자 활성화 △해외 동반진출 등 민간자율합의기구 성격에 충실한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안 위원장은 “대기업의 기술력과 중소기업의 다양성을 결합해 우리 경제가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힘줘 말했다.

중앙대 교수를 거쳐 다양한 국책기관장을 역임한 원로 경제학자지만 그는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활기차고 힘이 넘쳤다. 안 위원장에게 글로벌 저성장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는 한국경제의 성장 해법을 물었다.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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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반위 출범 5년이 됐지만 여전히 동반성장에 대한 입장차가 있습니다.

“각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반위는 민간자율합의기구란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신사협정을 맺고 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죠. 이해 당사자끼리 수십 차례 만나요.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나가고 있습니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기본으로 하되 시장의 결함과 미비점을 보완하는 갈등해소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시장경제 메커니즘과 동반성장이 충돌하지 않을까요.

“사실 동반성장이 표방한 대기업의 시장 진입·확장 자제가 규제성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는요. 와서 일을 해보니 현실은 달랐습니다. 경제학 이론이 가정하는 순수시장은 없잖아요. 시장경제가 뭡니까. 거래질서에서 정상가격이 작동되도록 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러려면 페어플레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거든요. 예컨대 기업간 갑을문화는 걷어내야 하는 거죠.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충실하면서 동반성장도 될 수 있습니다.”

- 이질적으로만 볼 이유가 없다는 거군요.

“자, 봅시다. 골목상권이나 민생품목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대기업 확장으로 시장에서 밀려나갑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해요. 이 사람들이 실업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거예요. 반면 동반성장 같은 합리적 영역 배분을 통해 이들의 연착륙을 유도하면 전체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간 한국경제가 압축성장해 오면서 경제성장은 곧 대기업 주도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만 가선 안 됩니다. 지금은 중소기업 역량을 키워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장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때입니다.”

- 실질적 성과가 있습니까.

“대기업에서도 동반성장 전담부서가 활발히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전경련 조사 결과 84개사로 늘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대기업 총수들도 중소기업 협력업체를 아우르고 골목상권까지 중요변수로 생각하며 경영전략을 짠다는 의미지요.”

-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이나 동반성장지수 발표가 도움이 됩니까.

“지정하고 평가하다 보니 동반위를 일종의 규제기관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어요. 사업 성격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성과공유제는 대·중소기업이 머리 맞대고 연구개발(R&D)하고 펀딩(funding)하는 내용이에요. 220여개 기업이 참여해 6500여개 과제를 수행했죠. 구매상담회도 실무적 성격이 강합니다. 중소기업들이 부품·소재 개발을 많이 하는데 대기업들이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대기업 구매담당자들이 중소기업 개발 제품을 확인하고 상담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양자간 정보와 거래과정에서의 비대칭성을 줄이는 건 시장경제의 중요 작동원리이기도 합니다.”

- 구체적인 대·중소기업 협력모델이 궁금합니다.

“중소기업의 글로벌화, 그리고 수출 참여가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은 중소기업 비중이 너무 낮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외 지사와 정보망, 네트워크를 갖춘 대기업이 현지 시장조사 결과를 전해주고 중소기업 제품을 전시해주는 겁니다. 대기업이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게 아니에요. 협력업체가 성장하면 결과적으로 대기업 제품 품질도 올라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동반성장이란 서로 영역다툼 하지 않고 동반진출을 하는 모델입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엄청난 해외무대가 생기잖아요. 국내 중소기업들이 진출하기에 굉장히 좋은 기회입니다. 국내 상권만 볼 필요가 없어요. 7개 은행과 8개 대기업이 참여해 만든 상생결제시스템도 같은 맥락입니다. 납품대금 결제 지연 관행만 해결돼도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시장경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한 기본적 장치이기도 하고요.”

- 시장 부작용 해소가 동반위의 중요한 역할이란 얘기군요.

“시대가 기업경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CEO를 넘어 CSO가 대두되고 있죠. 일본 전자기기 제조업체 교세라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항상 ‘공생’을 강조합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도 성장이 빈곤을 해결하는 건 맞지만, 이로 인한 양극화가 임계치에 달하면 성장 자체를 왜곡하고 깎아먹을 수 있다고 보잖아요.”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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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수 효과가 반감된다는 건가요.

“국제통화기금(IMF)이 6월에 발표한 ‘소득불균형의 원인 및 결과’ 보고서는 시사점이 큽니다. IMF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기관 아닙니까. 그런데도 낙수 효과에 의구심을 표했어요. 물을 계속 부어도 넘쳐 아래로 흘러가지 않고 맨위 물컵 용량만 커지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난다는 결론입니다. 선도부문 주도 경제성장이 빈부격차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포용적 성장이란 화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보이지 않는 규제’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제로섬 구도에서 불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봐요. 다만 관점을 바꿀 필요는 있습니다. 대기업이 해외시장 진출하는데 동반위가 토를 다는 일은 없잖아요.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들어와서 손쉽게 돈 벌기보다는 글로벌 기술경쟁을 벌이는 방향이 돼야죠. 수출이 자동차, 반도체 같은 전통적 제조업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 행사장에선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이 전시됐어요. 한류를 잘 활용하면 대기업이 끌고 중소기업들이 미는 동반진출 모델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동반위가 강압적이라는 얘기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역지사지’로 소통을 통해 합의에 도달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대형마트에서 문구류를 팔 때는 묶음 단위로만 팔거든요. 양측이 머리를 맞댄 결과 소형문구점과 판매방식을 차별화하자는 합의를 한 거죠.”

- 갈등을 줄이는 방향의 포용적 성장모델이군요. 좋아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동반위가 마치 규제기관처럼 비쳐진 측면도 있는데요. 이런 상생 방향을 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발광다이오드(LED) 시장 같은 경우 협상을 통해 대기업도 들어올 수 있도록 합의했죠. 대신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기술지원을 해 중소기업은 기술 품질을 끌어올리고, 해외진출 때는 함께 나간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무조건 대기업은 못 들어오도록 막는 게 아닙니다.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워 윈윈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죠.”

- 아무리 법으로 막아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요. 이런 상생문화가 중요하죠.

“골목상권이나 민생품목에서의 적합업종 지정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구개발(R&D)이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는 상생협약을 통해 대·중소기업이 함께 가야 해요. 지금처럼 저성장기에 접어든 어려운 때일수록 부품 조달이나 아웃소싱(외주)을 해외로만 나가지 말고 국내 중소업체와 손을 맞잡고 풀어가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양극화 해소의 핵심은 중산층 일자리 복원이에요. 중산층 일자리가 늘어나고 수입원이 생기면 내수가 진작되는 겁니다. 굉장히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급인재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데요. 정작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여력이 많지 않죠. 관점을 바꿔봅시다. 꼭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대기업에 필요한 1차 밴더(협력사)라면 우수인재들이 몰릴 수 있어요. 이런 방향으로 가야죠.”

- 경제학자로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FTA 전망은 어떻게 봅니까.

“우리나라가 TPP 창립멤버에서 빠진 건 아쉬워요. TPP 안에 들어가서 협상해야 한국형 스탠더드(표준)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원산지 규정도 TPP 회원국은 모두 자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잖아요. FTA의 경우 주요국가 중 우리나라가 선점 효과를 갖고 있는 한중 FTA는 체계적 공략이 필요합니다. 농·축산 분야 타격을 입는다고 하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건강식·청정식품 위주 푸드산업으로 시각을 바꾸면 중국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대기업이 판을 잘 깔아주고 농·어민과 중소기업이 역할을 충분히 해야겠죠.”

- 앞으로의 동반위 방향성과 중점사업은 어떻게 되는지요.

“우선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기업 숫자를 늘립니다. 동반성장은 이념이나 구호가 돼선 곤란해요. 무엇보다 실용이 중요합니다. 동반위는 기업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경영의 일환’이 되도록 운영할 방침이에요. 각 대기업의 특성과 경영 여건을 반영해 경영목표에 부합하는 자율적 상생협약을 맺어 동반성장 문화 확산에 힘쓸 계획입니다.”

◆ 안충영 위원장은…

1941년 경북 의성 출생.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제경제학회·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외국인투자옴부즈만 등을 지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위원회 의장,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옥조근정훈장·석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강원도 명예도지사를 맡고 있다. 지난해 8월 동반위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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