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선진화법이 초래한 야당의 추락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으로 타락했다는 것에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 원죄는 18대 국회 말 여당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있다. 본죄(本罪)는 법의 단물만을 삼키며 국회를 유린한 야당에 있다.

2012년 선진화법이 통과됨으로써 한국의 야당은 졸지에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유례가 없는 거대한 국회 권력의 소유자가 됐다. 법안 상정이 다수결이 아닌 ‘의원 60%의 동의’를 요구함으로써 소수 야당은 여당과 최소한 동등하거나, 국정책임 정당으로서 법안 통과의 짐을 맡은 여당보다 더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동시에 이제 국정의 주도권을 쥔 정당으로서 장래 수권의 책임을 감당할 능력과 태도를 보이는지 특별관찰할 대상도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간 야당이 보인 것은 국회 기능을 무력화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법안을 훼방한 양태뿐이다. 19대 임기 첫 3년의 대부분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파업과 장외 투쟁에 뛰어들어 허비했다. 남은 회기는 정부법안이라면 일단 거부하거나 빈껍데기가 되도록 강압 처리하거나 자신들의 당파 요구와 교환하는 인질로 삼았다. 국회에는 수만 개 제출 법안이 정처 없이 표류하고, 흥정을 마친 수백 개 여야 법안이 어느 날 뭉치 다발로 통과되는 것이 새로운 풍경이 됐다.

원래 선진화법은 국회의원의 모든 것이 다 좋지만 그래도 고된 몸싸움만은 싫었던 당시 한나라당의 젊은 의원들이 주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법의 제정 저변에는 야당 의원들도 언필칭 국회의원이니 최소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직업윤리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야당은 그렇지 않다는 게 목격됐다.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법들을 무기한 표류시키거나 흥정했으며, 법 처리 기준을 그들이 연대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기득권 노조, 자본·기업을 적대시하는 집단들의 지지 또는 거부에만 뒀다.

선진화법 시대의 한국은 점점 ‘그럭저럭 꾸려 나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국가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일에도 장래계획을 세울 수 없고 변덕스러운 국회의원의 처분에 맡기는 상황이 이제 ‘신(新)상태(new normal)’로 정착하는 중이다. 과거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대표 기업들의 추락, 경기 하락, 취업절벽의 가파른 추세는 아마 선진국 중에서 최악일 것이다. 계층 갈등과 국민 분열, ‘헬조선 외침’과 같은 패배주의적 국민 감성도 급속히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결딴난 이 상황에서는 국가가 난파선이 돼도 헤쳐 나올 방도가 없다.

따라서 합의정치는 원래 한국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수십년간 경제가 연 10%씩 성장하고 일자리가 들끓어 늘어나던 시대가 있었다. 좌파들은 이런 ‘한국의 기적’이 노동자들의 고혈로 이뤄진 결과이므로 누구 아래서라도 가능했을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때 오늘날 같은 선진화 합의정치를 했다면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그 시대를 이끈 정책·법·제도들이 하나라도 이뤄졌겠는가. 그때 합의정치였다면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 3000달러에도 미달하는 세계 최빈국 수준의 나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1970년 전후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추월했다고 하니 우리는 이미 북에 흡수 통일돼 김씨 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2년 한나라당은 야당에 기막힌 선물을 안겼지만 지나고 보니 이 선물은 ‘트로이의 목마’였는지 모른다. 선진화법을 삼킨 이래 야당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국민에게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집안 싸움으로 분열 직전에 이르렀다.

따라서 언젠가 선진화법을 없애게 될 날은 필연코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늦어 한국이 이미 말기 암으로 사경(死境)을 헤매는 상태가 된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인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