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드리 최영태 회장 "안된다고 생각하면 3류…스스로 무대 만들어 도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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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중·고교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주얼리 기업 나드리 최영태 회장
12월 1일 경남 통영서 특강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최고 대학
좌절 않는 도전과 열정이 성공요인
"돈 많아야 할 수 있다는 생각 안돼"
12월 1일 경남 통영서 특강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최고 대학
좌절 않는 도전과 열정이 성공요인
"돈 많아야 할 수 있다는 생각 안돼"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세계 무대라고 생각하면 성공하지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에 본사를 둔 주얼리(보석 및 귀금속 장식용품) 기업 나드리의 최영태 회장(사진)은 지난 27일 기자와 만나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자랐지만 지도를 보며 글로벌 기업가를 꿈꿔왔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국 캐나다 등 최고급 백화점 3700여곳에서 자체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는 최 회장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1984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주얼리 사업을 시작해 1997년 미국 진출에 성공한 최 회장은 2014년 초부터 경상대,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인천 문일여고, 전남 함평고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젊은이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기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나를 찾는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글로벌 기업가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최 회장은 “열 살 때 어머니가 장롱 위에 있는 가방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세금 납부 영수증 뭉치를 꺼내 보여줬다”며 “이때부터 ‘아버지처럼 자랑스럽게 세금을 내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현 경상대)에 입학해 갑종 2등기관사 자격증을 땄다.
최 회장은 “나는 내가 다닌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가 최고 대학이라고 생각했다”며 “‘금수저’가 아니라서, 일류 대학을 못 나와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3류 인생을 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야말로 최고의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늘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동남아를 오가는 무역선에서 해기사로 일하며 모은 자금 58만원으로 주얼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수중에 1만원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가게를 얻어 남대문시장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1년 만에 가게를 확장했고 5년 만에 주변 주얼리 상가를 인수했다. 최 회장은 “당시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하루 세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해 머리카락이 빠졌고 지금까지 이명 증세를 앓고 있다”며 “최근 창업 열풍이 불고 있는데, 사업 자금이 많아야 사업에 성공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30일 경남 고성문화센터에서 고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무대를 만들고 주연을 찾아라. 나는 연출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다음달 1일에는 경남 통영중에서 통영여고 충무고 학생 등 1000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최 회장은 3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에 본사를 둔 주얼리(보석 및 귀금속 장식용품) 기업 나드리의 최영태 회장(사진)은 지난 27일 기자와 만나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자랐지만 지도를 보며 글로벌 기업가를 꿈꿔왔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국 캐나다 등 최고급 백화점 3700여곳에서 자체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는 최 회장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1984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주얼리 사업을 시작해 1997년 미국 진출에 성공한 최 회장은 2014년 초부터 경상대,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인천 문일여고, 전남 함평고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젊은이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기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나를 찾는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글로벌 기업가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최 회장은 “열 살 때 어머니가 장롱 위에 있는 가방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세금 납부 영수증 뭉치를 꺼내 보여줬다”며 “이때부터 ‘아버지처럼 자랑스럽게 세금을 내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현 경상대)에 입학해 갑종 2등기관사 자격증을 땄다.
최 회장은 “나는 내가 다닌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가 최고 대학이라고 생각했다”며 “‘금수저’가 아니라서, 일류 대학을 못 나와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3류 인생을 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야말로 최고의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늘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동남아를 오가는 무역선에서 해기사로 일하며 모은 자금 58만원으로 주얼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수중에 1만원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가게를 얻어 남대문시장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1년 만에 가게를 확장했고 5년 만에 주변 주얼리 상가를 인수했다. 최 회장은 “당시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하루 세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해 머리카락이 빠졌고 지금까지 이명 증세를 앓고 있다”며 “최근 창업 열풍이 불고 있는데, 사업 자금이 많아야 사업에 성공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30일 경남 고성문화센터에서 고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무대를 만들고 주연을 찾아라. 나는 연출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다음달 1일에는 경남 통영중에서 통영여고 충무고 학생 등 1000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최 회장은 3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