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속임수는 정치, 전쟁,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도 속임수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자연계의 속임수는 오히려 규칙에 가깝다. 영국 유전학자 로버트 미첼은 자연의 속임수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속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둘째 속일 대상이 가까이 있을 때, 셋째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될 때다. 넷째 단계인 의도적인 거짓말은 인간만이 능통하다.
통상 남자는 하루 6회, 여자는 3회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도 있다. 별일 아니야, 차가 막혀서, 가는 길이야, 예뻐 보여…. 실제론 훨씬 자주 할 듯싶다. 하얀 거짓말이면 해 될 것도 없다. 플라세보 효과(위약효과)는 치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거짓말이 습관이 돼 기억까지 조작하는 공상허언증으로 발전하면 종종 사달이 난다. ‘신정아 사건’이 그랬다. 이목을 끌려고 꾀병을 일삼는 뮌하우젠 증후군도 있다. 진짜 문제는 거짓말이 공적 영역에서 표출될 때다. 가장 억압적인 세습왕조 북한의 국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체제에서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미국 대선주자들이 거짓말의 덫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미 육사에서 전액 장학금을 조건으로 입학제의를 받았다는 벤 카슨, 해병대에 자원했다는 힐러리 클린턴 등이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모든 후보를 다 합쳐도 도널드 트럼프에는 못 미친다. 폴리티팩트는 그의 말 40%가 거짓이라고 발표했을 정도다.
트럼프가 최근 “9·11테러 때 수천명이 환호하는 모습을 TV로 봤다”고 한 데 대해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는 ‘피노키오 4개’를 부여했다. 이는 ‘whopper(터무니없는 거짓말)’, 즉 혹세무민의 허풍을 가리킨다. 거짓말 하면 코가 커지는 피노키오에 빗대, 피노키오 한 개는 일부 사실 은폐, 두 개는 생략·과장으로 사실 왜곡, 세 개는 대부분 거짓인 경우다. 그렇다면 거짓과 식언을 밥먹듯하는 한국 정치인들에겐 피노키오 몇 개를 줘야 할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