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이치은행 반드시 법정 세워야
“도이치은행 직원들은 징역형에 처해져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플로이드 노리스는 2011년 8월 이른바 ‘11·11 옵션쇼크’에 대한 한국 검찰의 수사 결과와 관련해 이같이 주장했다. 자국에서 벌어지지도, 자국 은행이 개입하지도 않은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두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성토했다. 노리스는 “기소된 외국인 직원들이 재판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관련국들이 직원들을 한국에 인도해야 한다”고까지 목청을 높였다.

검찰은 당시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외국인 직원 3명과 한국 도이치증권 직원 박모씨 등 4명을 시세조종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씨 등은 옵션 만기일이던 2010년 11월11일 장 마감 직전 10분 동안 2조4425억원어치의 대규모 매도 물량을 쏟아내 주가를 급락시켰다.

코스피200지수 선물 콜옵션(살 권리)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동안 박씨 등은 미리 사놓은 풋옵션(팔 권리)을 통해 총 448억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유죄로 판명되면 최대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범죄였다.

노리스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박씨 외에 외국인 3명은 퇴사한 뒤 종적을 감췄다. 지난 4년여 동안 열린 형사재판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이 외국인 피의자를 인도받기 위해 이들의 본국인 영국 프랑스 등에 사법 공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재판부는 결국 외국인 피의자들의 소재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년 1월 선고를 내리기로 했다. 설사 유죄를 선고한다고 해도 처벌 방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벌금을 물릴 방법도, 교도소에 수감할 방법도 없다. 형사재판 선고에 앞서 같은 법원 민사재판부가 최근 도이치증권에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지만 이 결정도 외국인 피의자들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검찰과 법무부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아더 존 패터슨을 그가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최근 송환했다. ‘11·11 옵션쇼크’ 외국인 피의자들도 끝까지 추적해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들이 시세조종을 한 것이 맞다면 노리스의 주장대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