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白手로 白壽 맞을 순 없다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돌잡이다. 돌잡이는 쌀이나 붓, 활과 돈, 실타래 등을 펼쳐놓고 아이의 고사리손이 집는 물건에 따라 미래를 점쳐보는 이벤트다. 요즘은 골프공이나 청진기 등도 함께 올린다. 하지만 최근 돌잡이에서 실타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실타래는 무병장수, 즉 건강수명 연장을 상징한다. 실처럼 길게,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돌잡이의 변화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단순히 건강수명의 연장을 넘어 보다 가치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곡강시’를 통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며 짧은 인생사를 안타까워했다. 70세를 ‘고희’라 부른 까닭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 역시 자신의 예측처럼 59세로 생을 마감했다. 두보가 살던 시대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고희’를 비롯한 미수(米壽·88세), 희수(喜壽·77세) 등 고사에 빗댄 나잇값들은 현대 사회에서 그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태어난 아이의 평균 기대수명은 81.9세다. 1970년에는 61.9세였던 기대수명이 43년간 약 20년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늘어난 수명만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준비가 돼 있을까.

최근 서울대·메트라이프생명이 공동 조사한 ‘3차연도 한국 베이비부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4명 중 3명은 은퇴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부모와 자녀에 대한 부양 부담은 늘어나 노후준비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에서도 공적 연금으로 노후준비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재정여력은 충분하지 않다. 1차 베이비부머의 노년기 진입까지 5년이 채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은퇴 후 20~30년에 달하는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방안 마련은 현세대에게 당면한 과제다. 이때의 새로운 화두가 바로 ‘행복수명’이다. 행복수명은 나와 가족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기간이다. 생물학적 수명에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행복을 더한 개념으로 가족, 건강, 경제적 안정 등을 통틀어 현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생존을 넘어 삶을 누릴 수 있는 행복수명을 늘릴 때다.

행복수명은 생명보험의 가치와도 부합한다. 생명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나 사망으로 인한 가계경제력 단절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며 생애 전반의 의료비와 노후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 살아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대비해 나와 가족의 행복을 오래 이어주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지난 9월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문화를 하나의 사회문화로 정착시키고자 ‘100세 시대, 행복수명’ 캠페인을 시작했다. 성공적인 캠페인 추진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100세 시대 자문위원회’도 출범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와 국민의 행복수명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전개해갈 것이다.

국민연금 등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최소한의 생활 대책이다. 행복수명의 한 축인 재정 확보 노력은 국가와 개인이 함께해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국민에게 다양한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개인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고 준비하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과 행동이 필요하다. 행복수명의 문은 앉아서 기다린다고 열리지 않는다. 백수(白手·빈손)로 백수(白壽·99세)를 맞을 수는 없다.

이수창 < 생명보험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