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반대' 그리스 닮아가는 포르투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포르투갈 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총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뒤 긴축정책을 추진해온 우파 정부가 실각 위기에 처하면서다.

영국의 BBC방송 등은 10일 포르투갈 제1야당인 중도좌파 사회당과 급진좌파 정당인 좌파연합, 공산당과 녹색당 연합인 민주통일연맹이 연대해 이날 정부가 제출한 4개년 긴축정책 프로그램에 반대하며 내각 불신임 표결을 벌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불신임 투표가 성공하면 여당은 집권 11일 만에 자동 실각한다. 대신 지난 6일 정부를 실각시키기 위한 연대에 합의한 좌파 연합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좌파 정당들은 긴축정책을 뒤집어 복지 지출을 늘리고 공무원 임금을 올리겠다고 공언해왔다.

○기업인 “아직은 긴축정책 펼 때”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연합정부는 지난달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복지 축소와 증세 등 인기를 얻기 힘든 긴축정책을 펴고도 일군 승리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받았던 국가 중 긴축정책을 펼친 집권당이 재선에 성공한 첫 사례다.

포르투갈은 2011년 4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 때 유로존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780억유로(약 103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코엘류 총리는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2011년 6월 집권 이후 4년간 긴축정책을 펼쳤다. 복지 혜택을 줄이고 공공부문 임금을 깎았다. 이 기간 재정지출은 110억유로(약 14조5000억원) 감소했다.

'긴축 반대' 그리스 닮아가는 포르투갈
그 덕분에 포르투갈은 지난해 5월 구제금융에서 ‘졸업’했다. 포르투갈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2년 -4%였지만 지난해 0.9%로 플러스 반전에 성공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6%로 전망되고 있다.

연립여당이 총선에서 득표율은 1위였지만 230석 중 104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잃었다는 게 정국 불안의 ‘불씨’가 됐다. 개별 의석을 합하면 여당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야당은 총선 이후 여러 차례 현 정부를 퇴진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포르투갈 기업 지도자 100명이 “정치 불안이 투자와 고용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아직은 포르투갈 경제를 위해 긴축정책을 펼쳐 전력투구할 때”라는 합동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WSJ “포르투갈, 그리스 따라가나”

포르투갈 최대 야당인 사회당은 총선이 끝난 지 약 한 달 만에 좌파연합, 민주통일연맹과 함께 정부를 실각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들의 의석을 모두 합하면 121석으로, 과반 기준인 116석을 넘는다.

좌파 정당은 긴축정책 중단, 복지지출 확대, 공무원 임금 인상 등 그간 우파 정부의 정책을 모두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4년간의 긴축정책이 국민에게 지나친 고통을 안겨줬다는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포르투갈, 그리스 따라가나?(Portugal goes to Greece?)’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포르투갈 경제 위기를 불러왔던 좌파 정당이 다시 자신들의 정책을 펼치려 하고 있다”며 “(좌파 정당이 집권한) 그리스의 위기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즐기기만 했다면 포르투갈의 위기는 다시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르투갈 좌파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날 포르투갈 증시는 4.1% 급락했다. 두 달 만의 최대 낙폭이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2.827%로 11.9bp(1bp=0.01%포인트) 급등(채권값 하락)해 4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나수지/박종서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