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범위를 확대한 판결을 한 뒤 이를 적용해 내린 첫 이혼 사례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남편 A씨(75)가 아내 B씨(65)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깨고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였다.

의사인 A씨는 의사 집안의 딸인 B씨와 1970년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았다. 부부는 1980년 협의이혼을 했다. 두 사람은 1983년 다시 합가하고 두 번째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A씨는 B씨와의 불화를 이유로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A씨는 1984년부터 2년간 한 여성과 동거했다. A씨는 1987년 B씨 친정이 운영했던 병원의 원장으로 일하다 3년 뒤 병원 간호사와 동거를 시작해 혼외자를 낳았다. A씨는 1993년 B씨를 상대로 혼인무효확인 소송 등을 냈지만 패소했다. A씨는 장남 결혼식 때 B씨와 한 차례 만났을 뿐 별다른 교류 없이 지냈다.

A씨는 2013년 법원에 이혼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나온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돼 혼인 파탄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은 법적·사회적 의미가 줄었다”며 “A씨는 별거 기간에도 자녀들에게 7억3000여만원의 금전적 지원을 했고, B씨는 현재 경제적으로 넉넉해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다”고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월 혼인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 판례를 유지하면서도 △축출이혼의 우려가 없을 때 △이혼책임을 상쇄할 만큼 상대방과 자녀에게 보호·배려를 한 경우 △세월이 흘러 파탄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경우에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