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태형
사람의 신체를 직접 때리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고통을 주는 신체형은 과거 어디에서나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형벌을 대명률에 의해 사형, 유형(流刑:유배), 도형(徒刑:노역), 장형(杖刑), 태형(笞刑) 등 5형으로 나눠 장형과 태형을 대표적인 신체형으로 분류했다. 장형은 배의 노처럼 생긴 붉은 곤장으로 형에 따라 60~100대를 때리는 것이었다. 경범죄자를 작은 곤장으로 치는 태형은 죄에 따라 10~50대를 때렸다.

요즘엔 신체형이 거의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많은 나라에 남아 있다. 재밌는 것은 영국에선 정작 태형이 공식적인 형벌로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영국 식민지에선 많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다. 영국 식민지 시절 도입된 태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걸로 유명하다. 싱가포르에선 곤장 같은 막대기가 아니라 등나무 회초리로 태형을 집행한다. 성폭행, 강도, 불법무기소지 등 40개 흉악범죄를 저지른 16~50세 남성을 대상으로 3~24대까지 때린다. 맞다가 상처가 심하면 병원 치료를 받게 하고, 상처가 아물면 나머지 매를 다시 집행하는 식이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1994년 한 미국 청년이 주차된 차를 손상했다가 태형 네 대에 처해진 유명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언론의 압력에도 불구, 싱가포르 정부는 꿋꿋이 태형을 집행했다. 최근에는 사람 대신 기계가 태형을 집행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 아직까지 태형이 남아 있는 것은 유별난 이 나라의 법집행 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유도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인구의 약 20%가 이슬람 신자인데, 이슬람 율법 ‘샤리아’엔 신체형을 허용하고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이슬람권인 중동의 많은 국가와 일부 아프리카 국가, 말레이시아 아체 주 등에서도 여전히 태형이 집행된다.

이성과 악수를 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남녀 시인 2명에게 각각 99대의 태형을 선고한 이란 사법당국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스웨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악수했는데 이란에서는 친족 이외 이성과의 악수를 부적절한 성적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집에서 와인을 빚은 한 70대 영국 남성에게 공개 태형 350대를 선고하기도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범죄 예방 효과가 커도 심적, 신체적 후유증이 평생을 간다니 더욱 그렇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