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핵심 재무인력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과거에는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해외근무 경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젊은 세대(1960년대생)가 떠오르고 있다.

삼성의 재무인력은 회사의 고속성장을 이끈 주역 중 하나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기획통이 삼성그룹을 이끌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부각되며 재무통이 급부상했다.

삼성의 재무인력을 얘기할 때 ‘제일모직 경리과 라인’을 빼놓을 수 없다. 1960~1970년대 제일모직이 삼성의 핵심회사였던 시절, 이곳으로 인재들이 모였다. 제일모직을 발판으로 삼성이 도약했고 경리과 출신들이 그룹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김인주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최광해 전 삼성전자 부사장,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제진훈 전 제일모직 사장 등이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이다.

그 핵심에 이학수 전 부회장이 있다. 1971년 제일모직 경리과에 입사해 1982년부터 비서실에서 근무한 그는 1998년 구조조정본부장(비서실장 역할)을 맡아 2008년 물러날 때까지 ‘삼성의 2인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과거 권력’이 됐다. 2008년 ‘삼성 특검’ 사건이 터지고 이학수 전 부회장이 퇴진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재무팀 근무를 거쳐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많은 이들이 대거 물러났다. 이동휘 전 삼성BP화학 사장, 지성하 전 삼성스포츠단 총괄사장, 지대섭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 최외홍 삼성스포츠단 사장 등이 일선에서 퇴진해 사회봉사단, 스포츠단, 경제연구소 등을 챙기고 있다.

최근엔 삼성전자에서 해외사업 지원 업무를 해본 인물이 CFO로 발탁되고 있다. 사업이 글로벌화하면서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부상한 것이다. 1999~2002년 미국 뉴욕에서 근무하며 삼성전자 북미총괄 경영지원팀을 이끈 이상훈 삼성전자 CFO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지원팀장인 안정태 전무도 6년 이상을 미국에서 근무했으며, 삼성SDI의 김영식 부사장은 삼성전자 해외지원팀장을 거쳤다.

이들은 대부분 1960년대생이다. 권영노 삼성전기 CFO(1962년)와 김남수 삼성증권 CFO(1963년), 전용배 삼성화재 CFO(1962년) 등이 대표적이다. 재무인력으로 분류되는 최영준 삼성 미래전략실 부사장과 김명수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 최신형 삼성생명 CPC실장은 부산대 81학번 동기(1961년)다.

재무통들은 CFO에만 머물지 않는다. 안살림을 잘 아는 만큼 곳곳에서 맹활약 중이다. 미래전략실 전략 1팀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최영준 부사장, 경영진단팀장인 박학규 부사장 등도 재무통이다. 최 부사장은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그릇이 크다는 평을 받는다. 박 부사장은 스스로 일을 찾아다니는 ‘일벌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헬스클럽에 매일 새벽 5시에 나와 러닝머신 위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