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데스크 시각] '혁신 전도사' 송재훈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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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중소기업 부장 synergy@hankyung.com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의료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곁을 지키는 것이 의료인의 도리입니다.”
지난 6월12일,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임직원 8000여명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송자는 송재훈 병원장. 이 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란 발언으로 온갖 비난이 쏟아졌던 다음날이었다.
송 원장은 “환자들을 평소보다 더 따뜻하게 맞이하고 자세히 설명해 조금의 불안감도 없도록 해 달라”고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는 甲, 병원은 乙"
그로부터 한 달 뒤, 송 원장은 병원 측에 메르스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한 뒤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12일 국정감사가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 감염내과 교수로 돌아갔다.
송 전 원장은 감염내과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아시아 최초 감염예방단체인 아시아태평양감염재단을 1999년 설립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슈퍼박테리아와 항생제 내성 등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해 감염 사망자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2012년 3월, 삼성서울병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환자 행복을 위한 의료혁신’을 부르짖었다. “병원의 주인은 환자”라며 ‘을(乙)’을 자처한 것이다. 2020년까지 20개 의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도록 연구활동도 집중 적으로 지원했다.
원내(院內) 감염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의사 재킷을 짧게 바꾸고 제균 효과가 높은 소재로 간호사복과 환자복을 교체했다. 곳곳에 ‘접촉주의’ ‘혈액주의’ 등의 ‘감염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직원을 뽑아 갤럭시탭을 상품으로 주기도 했다. 원내 슈퍼박테리아 발생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의 중동 방문 이력을 확인하고 병명을 알아낸 의사도 이 병원 감염내과 전공의였다.
의료계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아니었다면 한동안 메르스 바이러스는 정체 불명의 폐렴 바이러스로 대한민국 곳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남겨진 '혁신 바이러스'
하지만 정부의 초기 미숙한 대응과 정보 폐쇄주의는 삼성서울병원의 명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 감염된 ‘14번 환자’는 정부 방역관리망 밖에서 움직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왔다. 정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이 병원의 응급실은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의료계는 “감염질환에 가장 믿을 만한 병원이어서 감염병 환자들이 몰린 삼성서울병원이 역설적으로 메르스 진원지가 된 것”이라며 “정부가 메르스 환자 정보만 병원과 공유했더라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의사와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환자 행복’ ‘진료 연구 병원문화는 물론 병원 임직원의 마인드까지 혁신’ ‘2020년까지 간 이식 등 20개 분야 세계 최고 병원 도약’을 차근차근 실천하던 송 전 원장.
메르스 책임을 짊어지고 그는 ‘중도하차’했다. 의료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가 전파한 환자 행복과 ‘혁신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임자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김태철 중소기업 부장 synergy@hankyung.com
지난 6월12일,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임직원 8000여명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송자는 송재훈 병원장. 이 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란 발언으로 온갖 비난이 쏟아졌던 다음날이었다.
송 원장은 “환자들을 평소보다 더 따뜻하게 맞이하고 자세히 설명해 조금의 불안감도 없도록 해 달라”고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는 甲, 병원은 乙"
그로부터 한 달 뒤, 송 원장은 병원 측에 메르스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한 뒤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12일 국정감사가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 감염내과 교수로 돌아갔다.
송 전 원장은 감염내과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아시아 최초 감염예방단체인 아시아태평양감염재단을 1999년 설립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슈퍼박테리아와 항생제 내성 등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해 감염 사망자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2012년 3월, 삼성서울병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환자 행복을 위한 의료혁신’을 부르짖었다. “병원의 주인은 환자”라며 ‘을(乙)’을 자처한 것이다. 2020년까지 20개 의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도록 연구활동도 집중 적으로 지원했다.
원내(院內) 감염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의사 재킷을 짧게 바꾸고 제균 효과가 높은 소재로 간호사복과 환자복을 교체했다. 곳곳에 ‘접촉주의’ ‘혈액주의’ 등의 ‘감염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직원을 뽑아 갤럭시탭을 상품으로 주기도 했다. 원내 슈퍼박테리아 발생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의 중동 방문 이력을 확인하고 병명을 알아낸 의사도 이 병원 감염내과 전공의였다.
의료계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아니었다면 한동안 메르스 바이러스는 정체 불명의 폐렴 바이러스로 대한민국 곳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남겨진 '혁신 바이러스'
하지만 정부의 초기 미숙한 대응과 정보 폐쇄주의는 삼성서울병원의 명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 감염된 ‘14번 환자’는 정부 방역관리망 밖에서 움직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왔다. 정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이 병원의 응급실은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의료계는 “감염질환에 가장 믿을 만한 병원이어서 감염병 환자들이 몰린 삼성서울병원이 역설적으로 메르스 진원지가 된 것”이라며 “정부가 메르스 환자 정보만 병원과 공유했더라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의사와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환자 행복’ ‘진료 연구 병원문화는 물론 병원 임직원의 마인드까지 혁신’ ‘2020년까지 간 이식 등 20개 분야 세계 최고 병원 도약’을 차근차근 실천하던 송 전 원장.
메르스 책임을 짊어지고 그는 ‘중도하차’했다. 의료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가 전파한 환자 행복과 ‘혁신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임자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김태철 중소기업 부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