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제품안전이 곧 기업 경쟁력이다
지난 9월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이 자사 디젤차량의 배기가스량을 조작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세계 최고의 품질 경쟁력을 무기로 전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독일 자동차산업의 명성과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국내에서도 2011년 흡입독성을 가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94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동안 위해성 보고조차 되지 않았던 새로운 독성물질들이 제품에 포함되면서 소비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라 전체가 원인물질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매달렸고 당시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법정투쟁을 벌이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 발달과 소비생활의 다양화로 하루가 멀다 하고 첨단 융·복합 제품이 출시되고 수천 가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인폭격기로 이름을 날렸던 드론이 영화촬영이나 무인택배, 장난감 등으로 변신해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3차원(3D) 프린터를 제조현장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의 진보는 분명 인류 후생에 큰 변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와 편리함의 이면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그 위험이 발현돼 소비자 안전에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기술의 진보 속도를 안전기준 등 규범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제품이 첨단 융·복합화할수록, 또 제품안전의 범위가 확대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제품안전에 대한 규제당국과 기업의 인식 전환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폭스바겐 사태가 자동차의 안전 문제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든지, 제품안전에 소비자 책임도 강조돼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소비자 안전의 개념이 보다 확대되고 적극적으로 해석되는 추세에서 정부와 기업은 거의 무한책임에 가까운 수준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받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각국 매장 진열대의 맨 앞줄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품안전관리제도나 시장 흐름을 반영한 규제당국의 선제적 시장 감시 역량 부족 등을 고려할 때 아직도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시험인증기관의 종합적인 소비자 위해요인 분석 능력이나 기업들의 제품안전관리 투자 규모 및 제품안전 의식도 선진국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이번 ‘폭스바겐 스캔들’ 사례는 한순간의 실수나 판단 착오가 기업의 신뢰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기업을 생사의 기로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소비자를 기만하고 제품안전 관리에 소홀한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언젠가는 소비자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일깨워줬다.

우리 정부나 기업도 누구나 제2의 폭스바겐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소비자 주권이 부여한 책무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제품안전 영역에 대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안전 한국’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기업, 정부 모두가 함께 이뤄 나가는 것이란 점을 명심하자.

제대식 < 국가기술표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