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 전 회장도 서해안 통해 밀항 시도…서해안은 '중국밀항' 루트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이 중국 현지에서 붙잡혀 송환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조희팔의 도주 경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희팔이 충남 태안을 통해 중국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알려진 뒤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도 비슷한 경로로 밀항을 시도하다가 붙잡히는 등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서해 중부 지역이 공공연한 밀항루트로 거론되고 있다.

조희팔이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양식업자 박모(48)씨의 배를 타고 격렬비열도를 거쳐 공해상으로 달아난 것은 2008년 12월 9일.
그는 대담하게도 대낮에 서해안을 빠져나간 뒤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에 옮겨 타고 중국으로 밀항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희팔이 격렬비열도 인근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고, 중국 어선에 올라 탄 뒤에 '만세'라고 외쳤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조희팔이 단 한 번의 시도로 밀항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해경이 밀항 한 달 전부터 박씨의 제보로 검거 작전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경의 결정적인 실수는 조희팔이 4조원대의 사기 행각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는 상황에서 그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밀항 사건을 단순 마약사범으로 오인한 것이다.

접촉해 온 측에서 공해상까지 배를 태워주고 물건을 받아오면 된다는 말만 믿고 마약을 국내로 들여온다고 판단해 공해상 접선후 항구에 들어오면 해경에서 검거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해경은 박씨와 공조해 밀항 전 두 차례나 검거 작전을 벌였으나, 중국배가 기상악화와 높은 파도로 접선 장소에 나타나지 못해 현장검거를 하지 못했다.

12월 9일 세번째 시도에서 해경은 박씨의 배가 마검포항으로 돌아온 뒤 검거 작전을 벌였으나 마약은 없었고 함께 배를 타고 나간 조희팔은 이미 중국으로 밀항해 버린 뒤였다.

해경은 박씨 배에서 조희팔이 버리고 간 여권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의 밀항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눈앞에서 조희팔을 놓쳤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희팔의 밀항 이후 서해안 항포구가 국내 범죄자들의 중국 밀항 루트로 공식화됐다.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2012년 회사돈 200억원을 챙겨 서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사정 당국이 밀항 첩보를 입수하면서 실패했다.

김 전 회장은 어선에 올라 선원실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충남 서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도주하려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검문검색을 벌이기도 했다.

서해안 지역은 매일 수백 척의 배가 드나들고, 주변에 인적이 드문 섬과 크고 작은 항구가 많아 눈에 띄지 않게 배에 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충남 보령에 사는 한 어민은 "서해를 통해 밀입국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라며 "충남 서해안은 섬이 많아 은신이 가능하고 중국과의 거리도 짧기 때문에 밀입국 주요 경로로 이용돼 왔다"고 말했다.

(태안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jkhan@yna.co.kr